제17장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데살로니가)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제17장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데살로니가)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 본문 분해


1.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함(1-9)

2.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함(10-15)

3. 아덴에서 복음을 전함(16-34)


■ 본문 강해


1.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함(1-9)


1)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함(1-2)


[17:1] 1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과 실라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암비볼리의 뜻은, “흐르는 물에 둘러싸인 성읍”이다.

빌립보에서 남서쪽 53km 지점에 위치하며 마게도냐의 중요한 도시였으나 지금은 네오코리로 불리는 마을이다1). 

아볼로니아의 뜻은 “아폴로에 속한 곳”이다. 암비볼리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에 있는 도시이다2). 

데살로니가의 뜻은 “텟살리의 승리”이다. 

마게도냐의 번영했던 도시였다3). 

1) ) 이성호 편, 간추린 성서대사전(성지사, 1982), p.1165.

2) 같은 책, p.1117.

3) 같은 책, p.337.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데살로니가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회당을 지어 그곳에서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고 안식일을 지켰다.


[17:2] 2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강론하여 세워진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성경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으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대단히 모범적인 교회였다(살전 1:2-4).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롬 10:17), 그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되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있다(딤후 3:16-17).


2)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함(3)


[17:3] 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성경을 해석하여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이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서 부활하셔서 구속을 완성하셨다(사 53:1-6; 시 16:10)라고 바울이 전하였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구세주)라고 증언하였다. 


“그(예수)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라고 말씀하셨고, 또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라고 말씀하셨다.


3) 믿는 사람과 불신자가 생김(4-9)


[17:4] 4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들은 사람들 가운데 경건한 헬라인들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 복음을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권함을 받고(πείθω 페이도)”

이 뜻은 ‘확신하다, 동의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전하였다(살전 1:5). 

그러므로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17:5] 5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유대인들이 유대교에 몰입되어 맹종하며 기독교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이 화장되는 것을 시기하였다.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유대인들이 시장의 괴악한 불량배들을 선동하여 데리고 와서 떼를 지어 성읍을 소란케 하며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바울과 그 일행을 군중 앞에 끌어내려고 찾았다. 

유대인들은 아주 악하고 거짓된 방법으로 바울과 복음을 반대하였다. 

이처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로 복음을 믿는 자들이 생기는가 하면 마귀의 역사로 바울을 시기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반대하는 일도 일어났다.


[17:6-7] 6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발견치 못하매” 

야손이 바울과 그 일행을 미리 다른 곳으로 피신하게 하였을 것이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야손과 및 형제들은 야손과 복음을 믿는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바울과 그 일행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읍장들에게 끌고 가서 외치기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르렀는데, 야손이 그들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이사의 법령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고발하였다. 


그들이 바울과 그 일행을 고발한 죄목은?

첫째, 천하를 소란케 하는 사람들이다. 

둘째, 가이사의 법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예수라는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죄들은 그 당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큰 벌을 받는 죄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거짓말로 바울을 모함하는 말이었다. 


[17:8] 8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많은 무리와 읍장들이 그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이처럼 군중들은 쉽게 흥분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그러므로 한편 말만 듣고 흥분하고 소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슨 일이나 고발 사건이 있으면 원고와 피고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고 바르게 판단하여야 한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잠 18:17)라고 말씀하셨다.


[17:9] 9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보를 받고 놓으니라”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서 그들을 풀어주었다. 

이는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였고, 또 바울과 실라가 고발한 자들의 말처럼 죄를 범하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함(10-15)


1)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를 사모함(10-11)


[17:10] 10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밤에 믿는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서쪽으로 80km, 해안에서 40km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마게도냐의 도시였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또 복음을 전하였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인데 밤에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밤에 데살로니가에서 출발하여 베뢰아에 도착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도착하자 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다.


[17:11] 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과연 이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연구)하였다. 


“더 너그러워서”

‘너그러워서(εὐγενής 유게네스)’는, ‘귀족적인, 마음이 고상한’의 뜻이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상고하므로(ἀνακρίνω 아나크리노)의 의미는 조사하다. 

살펴보다. 찾다.’의 뜻이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며 연구하였다. 


2) 믿는 사람이 많음(12)


[17:12]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그들 가운데 믿는 사람들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바울이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였고, 또 듣는 사람들이 진리를 사모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들으며 날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나님께서 복음이 믿어지도록 성령께서 감동하신다. 


3) 유대인들의 충동과 소동(13-15)


[17:13] 13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알고 그곳까지 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켰다. 

마귀의 일을 하는 자들은 복음을 반대하며 악을 행하는 일에 대단히 열심이다. 

그들이 복음을 믿고 선한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들도 복을 받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7:14] 14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믿는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였으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바울이 그들을 베뢰아에 남게 한 것은 베뢰아의 좋은 신자들에게 복음을 더 전하고 가르쳐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7:15] 15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을 안내하는 형제들이 바울을 데리고 아덴(아테네)까지 갔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자기에게 오게 하라는 바울의 명령을 받고 베뢰아로 떠나갔다. 


3. 아덴에서 복음을 전함(16-34)


1) 회당과 장터에서 복음을 전함(16-17)


[17:16-17] 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바울이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 성읍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의 마음(영)에 분노를 느꼈다. 

그리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변론하고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을 하였다. 

이는 아덴 사람들이 창조주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생명이 없고 헛된 우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면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헛된 우상에게 돌리기 때문이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볼 때에 바울처럼 마음에 격분하는 감정이 일어나야 한다. 


2) 철학자들과 변론함 (18-21)


[17:18] 18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아덴은 당시 헬라의 중심도시였고 철학이 성행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주장하여 물질주의와 쾌락주의 사상에 빠져있었다. 

또 스토아 학파는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주의 사상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증언하였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울을 말쟁이라고 조롱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어떤 낯선 신들을 전하는 자로 치부하였다.


[17:19-20] 19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붙들어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 교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그것들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알고 싶다.”라고 하였다. 


아레오바고는 아덴의 북서쪽에 있는 석회암의 낮은 언덕이며, 그곳에 아덴의 최고회의소 또는 법정이 있었다고 한다


1).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아덴 사람들이 알고자 한 것은 진리를 사모하여 알고자 하는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지식적인 만족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감정에서 나온 욕구였다.


[17:21]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 사람들과 그곳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지식을 말하거나 듣는 것 이외에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을 만큼 그들은 인간의 새롭고 지혜로운 지식을 좋아하며 추구하였다. 


3) 바울의 변증(22-31)


[17:22]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아레오바고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기도 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말하였다. “종교심이 많도다” 종교성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종교적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유사하다.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종교적 본능이 있다. 


2)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스스로 복을 받지 못하므로 스스로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아 의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찾을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스스로 상상하는 신(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기는 것이 우상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많이 섬기는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고 바울이 말하였다. 

그들이 종교성은 많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여러 가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17:23]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덴을 두루 다니며 아덴 사람들이 위하며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 

아덴 사람들은 많은 신이 계신 줄로 알고, 또그 여러 신들을 잘 섬겨야 복을 받을 줄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신들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으나 혹시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신이 있다면 그 신도 섬기기 위하여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도 만들어 놓고 섬겼다. 

그만큼 그들은 종교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바울이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신은 참 하나님이다. 


[17:24]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아덴 사람이 알지 못하는 참 하나님을 바울이 말하였다. 


1) 참 하나님은 창조주이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이 곧 참 하나님이며 창조주이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만물)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다.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라고 하셨다. 


2) 참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만물이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을 잘 보여준다. 

“창세로부터 그(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라고 말씀하셨다.3) 참 하나님은 천지를 통치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κύριος 퀴리오스)시니”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라고 말씀하셨다. 4) 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라고 말씀하셨다.


[17:25]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5) 참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다. 


[17:26]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6) 참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인류가 번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한 조상을 가지고 있으니 세계 만민이 한 형제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명과 국가의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 


[17:27] 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고자 하면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이 없다거나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런데 태양과 공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연히 생겨났다면 어떻게 사람에게 꼭 필요하도록 생겨났을까 이처럼 진지하게 생각하면 사람을 만드신 분이 사람에게 필요한 태양과 공기를 만드셨고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신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2-4)


[17:28]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우리가 그분(하나님)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를 통하여 주셨고 우리의 생명과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일분일초도 스스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너희 시인 중에도....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아덴 사람의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신의 소생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시인의 사상에도 신에게 전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시인이 말한 신은 우상의 헛된 신이며, 사람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17:29] 29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사람을 창조한 참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분이시니 참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바울이 증언하였다. 


[17:30]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우상을 섬겨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셨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보내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17:31]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시고,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2)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증거 한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하며 죽은 자는 아무도 부활하지 못하였다(롬 6:23).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이다. 


3)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 완료된 것을 증거 한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함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완료된 것을 증언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고 말씀하셨다. 


4) 성도가 부활할 것을 보증한다. 

성도는 복음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예수 님처럼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보증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3).


4)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결과(32-34) 


[17:32] 32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니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자기들의 지식과 맞지 않으므로 조롱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시 듣겠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복음을 믿을 수 없다. 

죄를 회개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다. 


[17:33] 33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아덴 사람들이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사상에 깊이 젖어 있고 그들은 철학적 지식을 자랑하는 교만으로 대부분 복음을 믿지 않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복음을 거부하는 곳에 서는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눅 9:5)라고 말씀하셨다.

[17:34] 34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덴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심지어 바울을 조롱하기도 하였으나 그 가운데 몇 사람이 바울을 가까이하며 믿었다. 

그중에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늘의 생명책에도 분명히 기록되었을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마태복음 성경강해 제2장 예수님(왕)께서 경배를 받으심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제13장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

이방인의 구원과 할례 문제 (행 15:1-29)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