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남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1장 구주 예수님
고석남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1장 구주 예수님
■ 본문 분해
1. 문안 (1-2)
2. 주신 것 알라(3-11)
3. 예수님의 재림을 알라(12-21)
■ 본문 강해
[1:1]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삼중적인 호칭이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요 1:1), 구주(구세주)이시며,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종이란 주인이 값을 주고 사서 자기 소유로 삼아 자기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종은 가장 낮고 비천한 신분으로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1) 종은 항상 주인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종(δοῦλος, 둘로스)은 일생 동안 일하여도 품삯이나 어떤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2) 종은 주인의 뜻대로 일해야 한다.
종은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고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자기의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하나님의 말씀) 대로 일을 해야 한다.
3) 종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한다.
종은 가장 낮고 천한 신분이다. 아무리 일을 잘하였어도 그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아무리 천한 대접을 받아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베드로는 이러한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였다.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 자들이다.
열두 사도(마 10:2-4)와 이방인들을 위한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행 14:14)가 있을 뿐이다.
사도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다.
사도들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하셨다.
2) 신약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사명을 주셨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하셨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함으로 이방인에까지 복음의 문이 열리고 신약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3) 신약 성경을 기록하는 일이다(엡 3:5).
신약 성경의 대부분이 사도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도들이 모든 성경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사도가 아닌 누가, 마가, 야고보도 성경을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사도들을 따라 다니며 진리를 듣고 배웠으며 사도들과 함께 복음 전하는 일에 협력하고 충성한 사람들이었다.
“시몬 베드로”
베드로의 본 이름은 시몬이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고쳐 베드로라는 이름을 그에게 주셨다.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실수를 많이 하였으나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반석과 같은 믿음으로 충성하였고,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성령을 받은 자는 베드로(반석)와 같은 믿음으로 살며,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성자 두 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고 하였으며,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의 구주(구세주)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칭의)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범하며 살다가, 죗값으로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의 죗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셨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택한 백성의 죄를 온전히 대속하신 증거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여 의롭다고 여기신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 또는 하나님의 칭의(稱義)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이 보배로운 믿음이다. [
1:2]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앎으로(ἐπίγνωσις, 에피그노시스)”는 “인식, 완전한 식별, 인정”을 뜻이며, 지식(γνωσις,그노시스)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완전한 지식이며, 현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인식)하며 아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의식하며 교제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실제로 누리게 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신령한 선물(복)을 말하며,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1) 사죄의 은혜와 평강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범하다가 죽으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단번에 죄를 용서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죄에서 해방된 평안과 기쁨이 있다.
2) 영생의 은혜와 평강이다.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백 년도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고 하였다.
영생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므로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평안과 충만한 기쁨이 마음에 있다.
또 영생을 얻은 성도는 몸이 죽어도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 안식하고 장차 몸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큰 평안과 기쁨이 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와 평강이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었을 뿐 아니라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고 하였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된 성도는 세상에서 왕이나 대통령의 아들이 된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음에 큰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4) 천국의 기업을 얻는 은혜와 평강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고난을 많이 당하는 것은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면 죄도 없고 죽음이나 고통이 없으며, 영원한 평화가 있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세계에서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마음에 한없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마땅하다.
[1:3]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의 신기한 능력”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능력이다.
구주 예수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구주 예수의 신기한 능력을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주셨다.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덕(도덕)으로써 우리 성도들을 부르셨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거룩한 삶(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께서 성도에게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
1) 영생의 새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성도에게 영생을 주셨다(요 3:16).
성도가 영생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고 하였다.
이렇게 살아난 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하셨다.
그뿐 아니라 영생의 새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3) 성도에게 성령을 주셨다(요 14:16-17).
성도가 성령을 받았으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이 믿어지고(고전 12:3),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고 순종하므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요 16:13).
또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갈 5:22-23).
[1:4]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로써”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일과 연결된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
①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되는 약속이다.
성도가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 인격이 온전히 거룩하게 변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고 말씀하셨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순종한 것만큼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된다(요 17:17).
또 성도가 성령을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히면 거룩하게 된다(갈 5:22-23).
이것이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② 부활하여 영생하는 소망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몸이 죽어도 영혼이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 안식하게 된다.
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몸이 부활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③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약속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그만큼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복을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으나 정욕을 따라 살면 죄를 범하게 되고 그 결과는 썩어 없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선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도가 정욕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6-7)라고 말씀하였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성도의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갈 4:19).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영의 생명(새 생명)이 있으니 영의 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생활을 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점점 자라날 수 있다.
[1:5-7]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그러므로”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므로”라는 의미이다.
“너희가 더욱 힘써”
성도들이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힘써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성도들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힘쓰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가 신성한 성품을 여덟 가지로 말하고 있다.
1) 성도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도의 거룩한 인격은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믿음이 없으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하고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다.
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고 선한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진실하고 선한 말씀으로 믿어야 순종할 수 있다.
2) 믿음에 덕을 더하라.
덕은 도덕성을 말하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성품이다.
성도가 믿음을 잘 지키려고 믿음만 내세우면 덕을 잃기 쉽다.
예를 들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핍박하는 자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기 쉽다.
또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책망하면서 멸시하는 마음을 갖기 쉽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도덕성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하며(마 11:29), 원수까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할 만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3) 덕에 지식을 더하여야 한다.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깨달아 아는 진리의 지식이다.
성도들이 덕에만 치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인간 중심의 종교 생활에 빠지기 쉽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려고 불의한 일에 타협하거나 형제가 불의한 행동을 해도 못 본 체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덕을 세우되 진리의 지식에 맞도록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4) 지식에 절제를 더하여야 한다.
성도들이 지식만 앞세우면 절제를 잃어버리기 쉽다.
“절제(ἐγκράτεια, 엥크라테이아)”는 자제 곧 자기를 잘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 맞는 행동도 적당한 범위 안에서 자제해야 한다.
절제란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잘 통제하는 것이다.
성경에 맞아 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경우에는 자제하여 덕을 세워야 한다.
5) 절제에 인내를 더하여야 한다.
성도들이 절제까지 한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니 절제에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는 믿음을 지키며 선을 행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이나 옳지 않으면 버리고, 옳고 선한 일이면 하기 싫고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그 일을 하여야 한다.
특히 환난 중에 믿음을 지키려면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6) 인내에 경건을 더하여야 한다.
성도들이 인내에 치우치면 억지로 참으면서 경건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인내하면서도 경건을 잃지 말아야 한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말과 행실이 깨끗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 도덕적인 인격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 27)고 하였다.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여야 한다.
성도들이 또 자신의 경건만 앞세우면 형제 사랑을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이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도 형제 우애를 잘하여야 한다.
형제 우애는 육신적인 형제 우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성도들을 사랑하는 일도 형제 우애에 속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8)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여야 한다.
형제 우애에 치우치면 더 넓은 사랑이 소홀히 되기 쉽다.
성도는 불신자나 원수까지도 사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에서 시작된 성도의 거룩한 인격이 사랑으로 완성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랑은 최고의 율법이며(약 2: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라고 하였다.
[1:8]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 여덟 가지가 성도들에게 있어 흡족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본받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는 사람이며, 신앙의 열매를 잘 맺히게 될 것이다.
신앙의 열매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전도하는 열매 등을 말한다.
[1:9]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여덟 가지 덕목이 없는 자는 영적 소경이라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르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옛 죄를 깨끗하게 하여 주신 것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책망을 받을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지 못한다.
[1:10]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시고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성도들이 더욱 힘써 정욕을 피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성도는 마귀의 시험이 있어도 실족하지 않는다.
[1:11]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사람들이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면 참으로 믿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신성한 성품을 흡족하게 이룬 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성한 성품을 이룬 그것이 곧 구원받은 증거가 된다는 의미이다.
[1:12] 12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성도들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이미 받은 진리에 서 있으나 베드로 사도는 항상 성도들에게 생각나게 하려고 베드로후서를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워 알고 있어도 필요할 때 그 말씀이 생각나지 않으면 성도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항상 이것들을 생각하고 더욱 힘써야 힘쓰는 것만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여 거룩하게 된다.
[1:13] 13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베드로가 육신의 장막에 있을 동안에 성도들을 일깨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일을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생각하였다.
[1:14] 14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지시하신 것 같이 베드로도 자신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날 날이 임박한 줄로 알았다.
베드로가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의 두 요소로 되어 있으나 인간의 주체는 영혼이며 육신은 영혼이 거하는 장막과 같다.
영혼이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것이 곧 죽음이다.
성도가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그 영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고후 5:1 참조).
그러므로 육신은 영혼이 임시 머무는 장막과 같다.
[1:15] 15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성도들이 필요할 때 베드로가 말한 진리가 생각나게 하려고 힘써 이 베드로후서를 쓰고 있다.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필요할 때 그 말씀이 생각나고 그 말씀이 우리 성도들을 인도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 성도가 말씀을 거스르면 말씀이 우리 성도들을 책망하고, 죄의 유혹이 올 때는 그 말씀이 검이 되어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또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1:16]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재림하심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하게 꾸며 만든 이야기가 아니며, 예수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증언한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다(마 17:1-8; 행 1:9-11 참조).
또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삼 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모든 이적을 보았고 그분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의 위엄을 직접 본 사람이다.
[1:17-18] 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지극히 높은 산(흔히 변화 산이라고 부름)에 올라갔을 때 지극히 큰 영광 가운데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하였으며 그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마 17:1-5 참조).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을 이루시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1:19] 19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가 변화 산에서 체험한 사건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서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다(요 14:1-3; 살전 4:13-18 참조).
그러나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성도들이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는 것이 옳다고 베드로가 말하였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이 말씀은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전혀 의심이 가지 않고 확실하게 믿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믿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말씀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1:20] 20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
예언을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예언)은 성령의 감동으로만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1:21] 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이라야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예언은 미래의 사건을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 해석하기 쉽다.
그리스도의 재림론을 잘못 해석하여 큰 혼란을 일으키며 성도들의 믿음에 큰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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