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제1장 하나님과 사람이신 예수
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제1장 하나님과 사람이신 예수
■ 본문 분해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4)
2. 하나님은 빛이시다(5-10)
■ 본문 강해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4)
1) 우리가 듣고, 보고, 손으로 만졌다(1)
[1:1]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직접 듣고, 눈으로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바 된 사실을 증언하였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태초(ἀρχή,알케)”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를 의미한다.
또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며 하나님이신 말씀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라고 하셨다.
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요 1:3),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며 빛이신 말씀이다(요 1:4).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하셨다.
“우리가 들은 바요”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들은 바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담으로부터 약 4,000년 후에 태어난 예수님이 태초로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다.
사도 요한이 어떻게 태초로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요한이 예수님에게서 들은 말씀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눈으로 본 바요”
사람들의 말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눈으로 보았다”고 말한 것은 사도들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이다.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바 되었다.
사도 요한은 이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과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하였다(요 1:1-3).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비로운 분이시다.
① 예수님은 태초부터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시다(요 1:14).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으로 신비로운 분이며 하나님의 비밀이다(골 2:2).
②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라고 말씀하셨다.
③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라고 하였고, 또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참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 곧 그리스도이시다.
2)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되었다(2).
[1:2] 2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한다(요 1:14).
그러므로 사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보았다고 요한이 말한 것은 예수님을 보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분이라고 사도 요한이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다.
빌립보서 2:6-8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셨다.
②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면 하나님 자신이 속죄양으로 죽으셔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으므로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막 10:45 참조).
③ 성도들의 본이 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고, 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을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함(3-4)
[1:3]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의 말씀 곧 예수님에 대하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바를 성도들에게 전하는 목적은 성도들이 사도들과 교제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들의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 곧 교회이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더불어 교제함은 구원의 주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기쁨이다.
[1:4]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사도들의 기쁨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이 곧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다. 세상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 교제하는 것도 기쁜 일이거늘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한다면 그 기쁨은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이며 오직 하나님의 자녀(성도)들만 맛볼 수 있는 천국의 기쁨이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나지 않고 밭에서 농작물이 나지 않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시므로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합 3:17-1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죄 사함을 받은 기쁨이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이며 죄인으로 태어난다(롬 3:10).
죄인들은 자기 죗값으로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죄인들의 죄를 온전히 대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단번에 죄 사함을 얻어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어떤 기쁨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천국의 기쁨이다.
② 영생을 얻은 기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요 3:16).
영생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영혼)이 살아나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된다(엡 2:5). 또 영생을 얻은 성도는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 안식하다가 장차 몸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니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③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함께 자유롭게 교제하며 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살전 5:16).
④ 마음에 천국의 평화를 누리는 기쁨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에 천국의 평화를 누리는 기쁨이 있다.
2. 하나님은 빛이시다(5-10)
1) 하나님께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5).
[1:5] 5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빛이시다. 예수님도 빛이시며(요1:4, 8:12), 성령님도 빛이시다(행 2:3-4).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나게 하여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의 심령을 밝게 비추는 영적인 빛이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이 낮과 같이 밝아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① 자기 죄가 드러나 회개하게 된다(8-9).
하나님의 빛이 사람의 심령에 비추면 그 사람의 모든 죄가 밝히 드러나므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게 된다.
② 하나님(예수님)을 본 것처럼 확신한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본 것처럼 확실히 믿는다.
사람이 본래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본 사람도 없다(딤전 6:16).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님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우리 영혼을 비추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확실히 믿게 된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심령을 비출 때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순종하게 된다.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 3:21)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는 자이다.
시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말씀하셨다.
④ 사랑과 선행의 열매가 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심령을 비추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원수도 사랑하게 된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요일 2:9-10)라고 하였다.
또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 5:9)라고 말씀하셨다.
성도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어야 선을 행하고,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유익하게 하며 성도의 인격이 점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된다(요 17:17).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께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
① 어두움은 죄악을 의미한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라고 하셨고, 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라고 하셨다.
죄악을 행하는 자의 마음은 가장 어두운 마음이다.
② 어두움은 고통을 의미한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2)고 하셨고, 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라고 말씀하셨다.
지옥은 가장 어두운 세계이다.
③ 어두움은 영적인 무지를 의미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어두운 가운데 있다.
“저희는 무지 무각 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는 자(6-10)
[1:6]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교제)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분명히 거짓말을 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어두운 가운데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과 사귐(교제)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이다.
진리는 진실함과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귐(교제)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는 진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인가?
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없다.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생겨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없다.
②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떠나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감동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저희는 무지 무각 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라고 하였다.
③ 욕심을 따라 죄를 범한다.
하나님을 떠나 마음이 어두운 가운데 있으면 마귀가 그 마음에 욕심을 넣어주어 죄를 범하게 된다(요 13:2).
[1:7] 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예수님은 빛이시며 항상 하나님의 빛 가운데 계신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① 빛이신 하나님(그리스도)과 동행한다.
빛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아버지와 동행하셨다(요 8:29).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다.
②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삼상 15:22).
③ 그리스도(하나님)와 교제가 이루어진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6절)라고 하였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의 원문의 동사가 3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죄의 유혹)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은 계속되며 죄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여 마음이 더러워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우리를 모든 죄의 유혹을 이겨 우리 마음을 계속 깨끗하게 한다.
[1:8] 8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 양심(본성)이 자기에게 죄가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성도들은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육신에 죄의 부 패한 성품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실수하고 죄를 범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나는 죄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어떤 사람이 “나는 죄 없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 속에 진리가 없다는 증거이다.
진리는 하나님(시 31:5)과 예수 그리스도(요 14:6)와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그러므로 그 사람 속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계시면 하나님의 빛이 그 사람의 심령을 비추어 그 사람 속에 있는 죄가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나는 죄 없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있으면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죄가 너무 많은 것이 드러나므로 그가 감히 “나는 죄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1:9]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힘써야 한다.
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기 죄를 발견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를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② 죄를 미워하며 원통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로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는 줄 알고 죄를 미워하며 원통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고 하셨다.
③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죄를 원통히 여기며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라고 말씀하셨다.
[1:10]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라고 하셨고, 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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