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2장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


■ 본문 분해


1.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림(1-8)

2.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함(9-11)

3. 왕의 거동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심(12-19)

4. 인자가 땅에서 들려야 함(20-36)

5.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37-43)

6.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 심판하심(44-50)


■ 본문 강해


1.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림(1-8)


[12:1-2]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예수님께서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에는 유월절 양을 죽여 하나님께 제사하는데 유월절 양은 속죄양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번 유월절 하루 전날 유월절 양으로 죽게 될 것이다.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하려고 마르다는 음식 만드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다.


[12:3]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리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다.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은 예수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마 10:3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바쳤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 천 번제를 드렸다. 

또 마리아가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것은 그가 지극히 겸손한 것을 나타낸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자신은 비천한 계집종인 줄로 알고 지극히 겸손하였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될 것을 상징한다(고후 2:15참조).


[12:4-6]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하며 말하기를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삼백 명의 품삯에 해당됨)에 팔 수 있는 아주 귀한 고급 향유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에 너무 감사하여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한 것은 그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는 자였다.

믿음이 없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의 신앙적인 행동을 적당한 명분을내세워 비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12:7-8] 7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은 예수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한 선한 행동이었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를 장사할 때에 그 시체에 향유를 바른다(창 50:2).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유월절에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마리아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미리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렸다. 

마리아가 이처럼 선한 일을 하고도 가룟 유다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을 만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마리아를 변호하시며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할 수 있었을까?


1) 예수님이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물이 되실 것을 이미 말씀하셨다(마 20:28). 

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으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마 16:21, 17:23, 20:18-19). 

그러나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유월절 양으로 죽게될 것을 깨달은 것이 분명하다(7절 참조).

마리아는 평소에 진리를 사랑하며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예수님이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깨닫게 하셨다(눅 10:39; 시 107:9참조).


2) 마리아가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마리아는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 되었을 때 살려주셨고, 또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깨닫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였고, 예수님께 부어드리는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3) 마리아가 지극히 겸손하였다.


마리아가 깨끗한 수건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린 것은 그가 지극히 겸손하였다는 증거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자신은 비천한 계집종인 것을 깨닫고 감히 수건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릴 수 없어 자기 머리털로 씻어드렸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은 그 인격이 겸손하게 변하는 것이 정상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눅 5:8참조).


4)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속죄양으로 죽게 될 것을 알고,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생각하며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미리 향유를 부어드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고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여야 한다.


2.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 함(9-11)


[12:9] 9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왔다. 

그들은 예수님만 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고자 함이었다.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을 살려낸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된것이며, 놀라운 이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사람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12:10-11]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 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이는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가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니, 그 한 사건만으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시기하고 예수님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하였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타락하였고 악한 행동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3. 왕의 거동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심(12-19)


[12:12-13] 12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그 이튿날에 명절(유월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종려나무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하였다. 

‘호산나’는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고 큰 소리로 호산나를 외치며 찬송하였다(사 9:7).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셔서 구원하시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유대나라가 바벨론에 망한 지 약 600여년 동안 한 번도 독립하지 못하고 외국의 지배를 받으며 고생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기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왕으로 알고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초림의 예수님은 속죄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인들의 구속을 이루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일은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셔서 천 년 동안 왕이 되실 것이다(계 20:1-6).


[12:14-15]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예수님께서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평화의 왕이심을 상징한다.


[12:16]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는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야 스가랴 9:9절의 말씀이 예수님께 대한 말씀이며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 행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12:17-19] 17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언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보아라.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바리새인들이 말하였다.


4. 인자가 땅에서 들려야 함(20-36)


1) 한 알의 밀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음(20-26)

2) 인자가 들려야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음(27-36)


[12:20-22] 20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가서 여쭈니


유월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헬라인 몇이 있었다. 

그들이 갈릴리 벳세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님을 뵈옵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예수님에게 알려드리려고 빌립에게 말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가서 그 사실을 말씀드렸다.


[12:23-24]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실 때가 왔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죽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는 일이다.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 

군인이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는 것도 국가에서는 전사자로 존경한다. 

우리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순교자의 영광을 얻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예수님만 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시면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얻는 일이다.


[12:25] 25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여 믿음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미워하면 자기 생명을 영생하도록 보전한다.


[12:26] 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사람이 예수님을 섬기려면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려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그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려면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을 미워하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귀히 여기신다.


[12:27]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죽으실 때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당하신다.


예수님은 오히려 많은 사람의 죄 값을 혼자서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그 죽음을 앞에 두고 마음이 몹시 괴로우셨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이 육신으로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버지께 그 고통을 면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이를 위하여,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양으로 죽기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피하려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고, 다만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그 고통을 면하게 하여 주시도록 기도하셨다. 

마태복음에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고통)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마26:39).


[12:28]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의 고통을 다 받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고,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러나 또다시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시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도 그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2:29-30] 29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곁에 서서 들은 사람들은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예수님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시면 죄인들이 구원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리가 난 것이 너희를 위한 말씀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2:31] 31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세상 임금은 마귀이다. 마귀는 이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왕 노릇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를 대속하시면 그 복음을 믿는 성도들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마귀가 성도에게서 쫓겨나고 더 이상 성도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구속은 마귀를 심판하여 쫓아내는 의미도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골 2:15).


[12:32-33] 32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 곧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임 당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땅에서 들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은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단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에 여호와를 원망한 죄로 여호와께서 뱀을 보내 많은 사람이 뱀에게 물려 죽게 하셨다. 

그때에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 놋 뱀을 쳐다보면 죽지 않고 살았다.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 값으로 멸망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시면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


[12:34] 34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무리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들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고 말하느냐? 인자는 누구냐?”라고 질문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계시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곳이 많이 있다(시 89:4; 사 9:7; 겔 37:25).

그러나 그 말씀들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초림의 예수님이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도 기록되었다(사 53:5,9). 

구약시대의 속죄양은 모두 죽어서 속죄제물이 되었다.


[12:35]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12, 9:4). 

예수님의 빛은 사람의 영혼을 비추는 영적인 빛이다. 

우리 영혼에 예수님의 빛이 비추면 죄가 다 드러나 회개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성도의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면 어두움에 붙잡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어두움이 무엇인가?


1) 어두움은 죄악을 의미한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9)라고 말씀하였다.


2) 어두움은 고통을 의미한다.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2)고 기록되었다.


3) 어두움은 죽음을 상징한다.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욥10:21)라고 말씀하셨다.


4) 어두움은 무지를 의미한다.


“저희는 무지 무각 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라고 말씀하였다.


5) 어두움은 미움을 상징한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11)고 하였다.


[12:36]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예수님께서 아직 세상에 계시지만 곧 십자가 구속을 이루시고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의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 그 기회가 오지 않는다(눅 12:19-20).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되어 빛의 열매를 맺게 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엡 5:9).


5.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37-43)[12:37-38] 


37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으나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았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라고 하였다(사 53:1참조). 

사람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마음에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선포하셨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욕심을 품고 있눈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적을 보아도 믿지 않는다.


[12:39-40] 39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저희가 믿지 못한 것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이사야가 예언하되 “하나님께서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였다(사6:10참조).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그가 눈으로 보아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그 마음이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12:41] 41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가 이렇게 예언한 것은 이사야가 그당시의 상황을 말한 것이며, 또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12:42-43] 42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이 유대교에서 출교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믿음을 지킬 수 없다(잠 29:25참조).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고 말씀하셨다.


6.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 심판하심(44-50)


[12:44-45] 44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외쳐 말씀하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인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다.

또 예수님을 보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요 10:30).


[12:46] 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다(요 8:12).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어두움은 죄악(잠 4:19)과 고통(사 8:22)과 사망(욥 10:21)과 무지(시 82:5)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다(요일 2:11).


[12:47] 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 당장 그 사람을 심판하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초림의 예수님은 속죄양으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12:48] 48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예수님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분이 있으니 곧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죄인을 심판하시는 인격적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신다.


[12:49-50] 49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하신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말할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고 예수님은 그대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들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명령하신 말씀도 죄인들이 그 말씀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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