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변화된 모습 (마태복음 17:1-7)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마태복음 강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고 가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장차 예수 그 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광경이 너무 좋아서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 예수님께서 변화된 모습의 교훈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의미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5절)라고 하였습니다.
해 같이 빛난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은 예수님에게 죄가 없어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2)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은, 예수님께서 머지 않아 죄인들을 위한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영광스러운 몸으 로 부활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눅 9:31; 마 17:22-23참조).
3) 구원받은 성도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죄인들이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으면 의롭게 되고(롬 5: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교훈하셨습니다(엡 2:10).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이 세상에서도 변화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빌 3:21).
2.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 둘이 나타난 것은 그리 스도에 대한 진리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둘은 증거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1)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 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을 상징합니다.
구약성경의 중심은 하나 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창 3:15)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사 7:14)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 (삼하 7:12-16)과 이 외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속죄양으로 죽으실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눅 9:31).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하나 님의 아들이시므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담 당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양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별세에 대하여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속죄양으로 죽으실 것 을 증거한 것입니다.
3) 부활하실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예수님은 곧 부활하실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과거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그들도 장차 부활할 몸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모세는 죽어서 부활할 사람 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살아 있는 성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죽은 성도와 살아있는 성도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이 늙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고, 죄도 범하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완성입니다.
3. 산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예수님이 변화되 셨습니다.
산은 여러 가지 상징성이 있습니다. 세상은 요란하나 산은 고요하고, 세상은 변화가 많지만 산은 변함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산에서 시작하여 산에서 끝나는 종교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이 최초로 거처한 곳이 에덴동산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제물로 바친 곳도 모리아 산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가셔서 기도하신 곳이 감람산이며 십자가를 지신 곳도 골고다 산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도 감람 산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꼭 산에 가지 않더라도 심령이 고요한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기도 자체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심령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께 지혜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는 하는데 변화가 일어 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하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죄를 끊어 버리고, 자신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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