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예수님(왕)의 통치(계속)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마태복음 강해
■ 본문 분해
1. 중풍병자를 고치심(1-8)
2. 마태를 제자로 부르심(9-13)
3. 금식에 관한 교훈 (14-17)
4.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심(18-22)
5. 죽은 소녀를 살리심(23-26)
6. 두 소경을 고쳐주심(27-31)
7. 벙어리를 고쳐주심(32-34)
8. 예수님의 그리스도 사역(35-38)
■ 본문 강해
1. 중풍병자를 고치심(1-8) (막 2:1-12; 눅 5:17-26 참조)
[9:1-3]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동 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 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 하도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가 본 동네(가버 나움)에 도착하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다. 그들이 아무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아들아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다.
믿는다고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행동을 통하여 그 사람의 믿음이 나타나다. 예수님 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그 당시 중풍병은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중풍병을 능히 고쳐주실 줄로 확신하고 찾아 왔다.
2)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믿음이다.
중풍병 자가 스스로 걸어갈 수 없는 상황에 서 네 사람이 중풍병자의 침상을 메고 갔다.
그들이 예수님이 계신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방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침상을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에 구멍을 내고 침상을 끈으로 달아 내렸다(막 2:4참조).
남의 집 지붕에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인가!
그러나 그들은 모든 난관을 다 극복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끝까지 노력하였다.
3) 서로 협력하는 믿음이다.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하여 네 사람이 협력 하여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 나아갔다.
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가는 일에 끝까지 협력하였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는 자신이 죄 때문에 하나님께 저 주를 받아 중풍병에 걸린 줄로 생각하고 회개 하며 두려워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우리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죄를 찾아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이다.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 로 “이 사람이 참람하다.”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9:4-5]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 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 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하셨다. 이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은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쉽다는 것 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예수님에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므로 죄인들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2) 죄 사함 받는 것은 믿음으로 된다.
죄인이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단번에 되니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일어나 걸어 가는 것은 몸으로 순종해야 하므로 어렵다.
3) 죄 사함 받는 것은 단 번에 되기 때문이 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단번에 되므로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걸어가는 것은 일생 동안 계속해야 하므로 어렵다.
[9:6-8]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 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 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 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하노라.”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 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은 단순히 중풍병자가 불쌍해서 고쳐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의 첫째 목적은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2. 마태를 제자로 부르심(9-13)(막 2:13-17; 눅 5:27-32 참조)
[9:9] 9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가 세관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시니 그가 곧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다.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 곧 따라나선 것은 그가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태의 중심을 아시고 “나를 따라오너라.”하실 때 마태는 곧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마태는 한 눈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볼 만큼 영안이 밝은 자였고, 즉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라 갈 만큼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9:10-11]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 여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가 예수님을 영접하니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베풀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 마음에 큰 기쁨이 있다(눅 19:5-6).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기뻐 하여야 한다(살전 5:16참조).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바리 새인들이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되 “너희 선생은 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 시느냐?”라고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의 외모만 보고 비판하였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다(롬 3:10).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신다.
[9:12-13]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 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 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자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 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건강한 자’는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이다.
‘의원(의사)’은 영혼의 병을 고치는 예수님이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 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쓸데없다.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병든 자는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꼭 필요한 그리스도(구세주)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며, 죄인을 불러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고,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자들을 불러 구원하려고 오셨다.
3. 금식에 관한 교훈 (14-17)(막 2:18-22; 눅 5:33-39 참조)
[9:14-15]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 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 하나이까 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혼인집의 신랑으로 비유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신 랑과 함께 있는 혼인집의 손님과 같아서 기뻐 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때는 금식하 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다
[9:16]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복음을 비유하고, ‘낡은 옷’은 의식적인 율법을 비유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의식적인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
[9:17]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복음을 비유하였고,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을 비유하였다. ‘새 부대’는 복음의 새로운 제도를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유대교의 전통이나 형식적인 의식과 맞지 않는다.
4.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심(18-22) (막 5:21-43; 눅 8:40-56 참조)
[9:18-19]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안수하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관리는 회당장 야이로이다(막 5:22).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 딸이 죽었으나 예수님은 그를 살려주실 것으로 믿고 찾아왔다. 야이로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줄로 믿고 찾아왔다.
2)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그의 죽은 딸을 살려주실 것을 믿고 찾아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일 어나 회당장을 따라 가셨고 제자들도 함께 갔 다.
9:20-22] 20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 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 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그때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한여자가 예수님의 뒤에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그 여자는 자기 마음에 ‘내가 예수 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얻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혈루 증 앓는 여자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다.
혈루 증을 않던 여자가 12년 동안 고치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었다.
혈루 증은 율법에 의하면 사람을 부정케 하는 병이다(레 15:13-15). 혈루 증을 앓는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 접촉된 사람까지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된다 (레 15:11). 그런데 혈루 증 앓는 여인이 감히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려고 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 였다.”고 하시니 그 여자가 그 즉시로 혈루증 이 나았다.
5. 죽은 소녀를 살리심(23-26) (막 5:21-43; 눅 8:40-56 참조)
[9:23-24] 23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이 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님께서 그 직원의 집에 들어가서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말씀하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시니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 소녀가 죽은 것이 확실한데 예수님께서 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소녀를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신 것은 예수 님이 생명이요 부활인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진리를 계시하셨다(요 11:25).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려고 가시는 도중에 혈루 증 앓는 여자를 고쳐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죄인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고 그 후에 영생의 새 생명을 주시는 진리를 계시하셨다.
[9:25-26] 25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예수님께서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들어가 셔서 그 소녀의 손을 붙잡으시니 그 소녀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 놀라운 소문이 그 온 땅 에 퍼져 나갔다. 예수님의 구원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새 생명을 주신다. 죄를 회개하고 그리 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죽은 영혼을 살려주신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 도께서 재림하실 때는 죽은 성도의 몸도 부활 하게 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신다.
6. 두 소경을 고쳐주심(27-31)
[9:27-31] 27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 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그 눈 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너희 믿은 대로 되라”
예수께서 소경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소경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하시니 그들이 대답하되 “주여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 기소서.”라고 하였는데 ‘다윗의 자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마 22:42).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되었다 (삼하 7:12-16).
또 그리스도가 오시면 소경을 보게 하신다 는 것도 성경에 예언되었다(사 35:5).
3)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믿음이다.
소경들이 부르짖을 때에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따라가며 소리 질러 애원하였고,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그곳 까지 따라갔다.
예수님의 구원은 먼저 죄를 사하여 주시고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심), 그 후에 죽은 영혼을 살려주시고(죽은 소녀를 살려주심), 그 다음에는 영의 눈(신령한 눈)을 밝게 하여 하나님과 진리의 세계를 보게 하신다.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소경들의 눈을 밝게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엄히 말씀하시기를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하셨다. (그 이유에 대하 여는 마태복음 8:4절 강해를 참조할 것).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님의 소문을 그 온 지역에 전파하였다.
7. 벙어리를 고쳐주심(32-34) (눅 11:14-15 참조)
[9:32-34] 32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귀신이 쫓겨 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 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소경들이 눈이 밝아져 떠나간 후에 마침 사 람들이 악령 들려 벙어리 된 한 사람을 예수님 께 데려오니 악령이 쫓겨나고 그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말하기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일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말하기를 “그가 악령들의 왕을 빙 자하여 악령들을 쫓아낸다.”라고 비방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 악령이 사람에게 들 어가 벙어리 되게 한 것은 악령의 하는 악한 일이다.
그런데 악령의 왕이 악령을 쫓아내고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만 악령을 쫓아 내고, 악령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실 수 있다.
8. 예수님의 그리스도 사역(35-38)
[9:35] 35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성읍들과 마을들을 다니시 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예수님은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깨닫도록 가르쳐주셨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부지런히 전파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들이 부지런히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성읍들과 마을들을 다니시 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예수님은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깨닫도록 가르쳐주셨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부지런히 전파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들이 부지 런히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은, 그들의 육신이 건강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신 것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영혼을 고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것을 계시하셨다.
[9:36] 36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 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 함이라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바른 지도자가 없으므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나라 종교지도자들 곧 대 제사장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은 유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삯군 목자들과 같았다(요 10:12).
[9:37-38]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 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 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추수할 것이 많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는 일꾼은 사명감이 투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고 가르치며, 오직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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