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중풍병자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마가복음 강해
■ 본문 분해
1. 중풍 병자를 고치심(1-11) (마 9:1-8, 눅 5:17-26)
2.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심(13-17) (마 9:9-13, 눅 5:27-32)
3. 금식에 대한 교훈(18-22) (마 9:14-17; 눅 5;33-39)
4.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심(23-28) (마 12:1-8, 눅 6:1-5)
■ 본문 강해
1. 중풍 병자를 고치심(1-11) (마 9:1-8, 눅 5:17-26)
[2:1-5] 1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예수께로 올새 4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예수께서 그 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 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들렸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문 앞에라도 더 이상 수 용할 수 없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으나 많은 사 람들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 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어떤 믿음을 보셨을까? 그들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그 당시 중풍병은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예수님에게 중풍병도 능히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찾아왔다.
2)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믿 음이다.
예수님을 찾아가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중풍병자가 혼자서 예수님을 찾아갈 수 없었으나 네 사람이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 나아갔고, 예수 님이 계신 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었으나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 에 구멍을 내고 침상을 끈으로 달아내렸다.
3) 서로 협력하는 믿음이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의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 나 아온 것은 그들이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하여 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중 풍병에 걸린 줄로 생각하고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위로하셨다.
[2:6-7] 6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 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 히 죄를 사하겠느냐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 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 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2:8-9] 8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 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 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 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 네 상을 가지 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쉽고, “네 죄 사함을 받 았느니라.” 하는 말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어려 운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른 대답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 라.” 하는 말이 쉽고,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렵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증거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을 해야 쉬운 것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하는 말이 어렵고,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쉽다.
이렇게 바른 대답을 하려면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면 예수님 께서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에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쉽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2)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참된 의미를 깨 달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은, 예수님이 영혼의 병을 고치는 의사임을 증거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막 2:17).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은 먼저 죄 사함을 얻게 하시고, 그다음 하 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걸어가게 하신다.
또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만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은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또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믿을 때에 단번에 되지만 말씀 을 순종하는 것은 일생동안 하여야 하므로 어렵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는 것이 쉽고,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2:10-12]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 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 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 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 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다. 그러므로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말하기를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 다.”고 하였다.
2.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심(13-17)
(마 9:9-13, 눅 5:27-32)
[2:13-14] 13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 라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 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니 큰 무리가 나아왔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너라.”하시니 곧 일어나 따라갔다.
레위는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당하는 세리였으나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따라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이다.
레위가 만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 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따라갈 이유가 없다.
아마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은 것이 확실하다.
2) 그리스도를 사모하였기 때문이다.
레위가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따라가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레위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 모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따라갔다.
3)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항상 부지런히 일하는 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하시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지 않는다(출 3:1-5, 왕상 19:19-21).
4)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레위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것 저것 망설이지 않고 즉시 세관의 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갈 만큼 결단력이 있었다.
[2:15-16] 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 이러라 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 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레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보니 너무 기뻐서 자 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 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보고, 예수님의 제자 들에게 말하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 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비난하였다.
[2:17] 17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 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느니라”
건강한 자는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비유하셨고, 병든 자는 자신들을 죄인 이라고 생각하는 세리와 죄인들을 비유하셨다.
또 병든 자를 고치는 의원(의사)은 예수님을 비유하셨다.
예수님의 구원은 의사가 병든 자들을 고치는 것 과 같다.
1) 병든 자가 그 병을 고치면 몸과 마음이 평안 하고 대단히 기쁘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심령에 큰 평안과 기쁨이 있다.
2)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아야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병든 자는 고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병을 고치면 건강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영혼의 병을 고치시는 의사이다.
그러나 세리와 죄인들처럼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의 영혼을 예수님께서 다 고쳐주신다.
3. 금식에 대한 교훈(18-22)
(마 9:14-17; 눅 5;33-39)
[2:18-20] 18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 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 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 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 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 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그러나 신 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 이니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 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질문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 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 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세계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세계이다. 그러므로 전혀 슬퍼하거나 금식할 이유가 없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예수님이 속죄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금식하며 회개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21]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 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일을 비유 하셨고, ‘낡은 옷’은 율법주의와 의식주의를 따르는일을 비유하셨다.
복음을 믿는 일이 율법주의와 의식주의를 일과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2:22] 22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 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복음을 비유하셨고, ‘낡은 가죽 부대’는 율법적 의식주의를 비유하셨다.
‘새 부대’는 율법적 의식주의를 탈피한 새로운 제도와 방식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으면 율법적 의식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 곧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형식 적인 금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운 마 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4.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심(23-28)
(마 12:1-8, 눅 6:1-5)
[2:23-24] 23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4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 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에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잘라 먹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고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한 세밀한 규례를 만 들어놓고 지키면서 그 규례를 어기면 가차 없이 정죄하였다(마 23:13-36참조).
[2:25-26]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그가 아비아달 대제사 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 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윗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들어 안식일에 대한 진리를 증거 하셨다(삼상 21:1-6참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 진설병을 얻어먹었는데 원래 진설병은 제사장 외 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이다(레 24:9).
이처럼 다윗 도 시장할 때 율법을 어기고 그 진설병을 먹었으 나 성경 어디에도 다윗이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율법의 근본정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마 22:37-39).
[2:27]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1)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안식일 제도가 없었다면 인간은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계속 일을 하므로 과로로 건강을 해치게 되었을 것이다.
2) 안식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최초의 칠일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를 상징한다(창 2:3).
그뿐 아니라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안식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은 혜를 상징한다(신 5:15).
또 하늘나라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히 4:9-11).
3)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님과 교제하므 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셨다.
[2:28]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마 11:28)고 하셨다.
인간은 본래 에덴동산 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안식을 잃어버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사죄의 안식을 주신다.
또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게 하시며, 하나님의자녀가 되게 하셔서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는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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