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바른복음연구회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
■ 본문 분해
1.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함(1-18).
2. 세례 요한이 자신을 증언함(19-28)
3.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함(29-34)
4. 요한이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소개함(35-42)
5.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함(43-51)
■ 본문 강해
1.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함(1-18).
1)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1)
2)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3)
3) 생명의 빛(4-11)
4)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12-13)
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14)
[1:1]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ἀρχή 아르케)’는, ‘시작, 첫째’을 의미한다.
태초는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啓示)된 계시의 시작을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인격적인 말씀이다.
그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가 있는 말씀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다(요 1:14).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인격적인 말씀이 성육신 이전의 성자 예수님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 가지 형태로 계시되었다.
①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인격적인 말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인격적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그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창 1:3-4)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있는 인격적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며, 동정녀를 통하여 탄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죄인들의 속죄양으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②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된 말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하게 하셨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
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 16:23).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은 듣는 사람에게만 임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복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죄가 되어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받는다.
③ 성경에 기록된 말씀.
성경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으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에게만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는다.
그러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③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말씀(성육신의 말씀).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며 너무 신기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다.
[1:2-3]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He,예수)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말씀이신 예수님)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그(말씀이신 예수님)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요한이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4-5]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영생)이 있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생명체 곧동물과 식물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다.
또 예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요일 5:11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이적을 통하여 사람들의 심령에 빛을 비추었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이 어두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1:6-8] 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였다.
그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려고 온 자이다.
그가 빛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빛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생명의 빛이 아니며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려고 온 선지자였다.
[1:9]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의 심령을 비추는 영적인 빛이 있었다.
영적인 참 빛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여러 차례 빛이라고 증언하셨으니 생명의 빛(요 1:4,8:12), 참 빛(요 1: 9), 세상의 빛이시다(요9:5).
예수님을 영적인 참 빛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 죄를 드러나게 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예수님 안에 있는 영의 빛이 심령을 밝게 비추므로 자기 속에 있는 죄가 다 드러나 죄를 회개하게 된다.
또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어두움 곧 사망의 길(죄악의 길에 다니지 않는다.
② 진리를 드러나게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이다(엡 6:19; 고전 4:1).
그러므로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만 하나님과 복음을 깨달아 믿을 수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적인 참 빛이 심령을 밝게 비추므로 하나님과 진리의 세계를 밝히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본 것처럼 확실히 믿고 순종한다.
③ 영생을 얻게 하는 빛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다(요 1:4).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영생을 얻는다(요3:16).
[1:10-11]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예수님(태초부터 있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나 세상이 그분(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예수님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땅에 오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창 22: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으므로 자기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1:12-13]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세주)로 믿는다는 의미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혈통(피)이나 육정(성적인 욕구)이나 사람의 뜻(남편의 뜻)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1:14]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도들과 함께 계시던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우리(사도)들 가운데 계셨으며 우리(사도)들이 그 영광을 보았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독생자(μονογενής 모노게네스)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동정녀에게 태어나신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으로 오신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이다.
독생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독특한 탄생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예수님의 참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보는 사람만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참 사람과 참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죄인을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어주셨다(막 10:45).
또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셔서 말씀과 이적으로 구원의 진리(도리)를 잘 보여주셨다.
이것이 충만한 구원의 은혜이다.
[1:15-16]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
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여섯 달쯤 먼저태어났다(눅 1:26-38참조). 그러므로 그가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예수님)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
니라.”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니 요한보다 앞선 정도가 아니라 영원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예수님은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으로서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충만한데서 은혜와 진
리를 받는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은혜를 받고 또 받는다.
[1:17]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율법이 죄인을 구원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롬 3:10).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복음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복음의 진리이다.
[1:18]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말씀이 곧 독생하신(μονογενής)하나님이시다(1절).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은 하나이다.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하신대”(요 10:30)라고 말씀하셨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2. 세례 요한이 자신을 증거 함(요1:19-28)
1) 그리스도가 아니다(19-21)
2)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다(22-23)
3) 물로 세례를 주는 자이다(24-28)
[1:19]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세례 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사백 여년 만에 혜성 같이 나타난 유대인의 선지자였다.
그가 군중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라고외칠 때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고 요한에게 몰려들었다.
요한이 회개하는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하였다.
[1:20-21]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한이 자신을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드러내어 말하되 “나는 그리스도(구세주)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또 묻되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말 4:5)라고 하니 요한이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였고, 그들이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신 18:15)라고 할 때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셨고(말4:5), 모세가 자기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신 18:15).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요한을 혹시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나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그리스도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질문할 때 요한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 요한의 겸손함과 진실함을 배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가 아닐까 의심하며 우러러 보는데 그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1:22-23]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
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이 또 말하되 “네가 누구냐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 때에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사 40:3)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뜻)을 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바른 길을 닦는다는 뜻이다.
그 바른 길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막 1:15참조).
[1:22-23]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
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이 또 말하되 “네가 누구냐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 때에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사 40:3)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뜻)을 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바른 길을 닦는다는 뜻이다.
그 바른 길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막 1:15참조).
[1:24-28] 24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요한이 대답하되 나
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인데 요한에게 묻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라고 하였다.
그때에 요한이 대답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예수님)이 서있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치 못하겠
노라.”라고 하였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다.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수 없는 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 때문에 눈이 어두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눈이 어두워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도 알지 못한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밝히 보고 감히 그 분의 신발 끈을 풀 수도 없는 자라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이 일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다.
3.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함(요1:29-34)
1)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님(29)
3)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32-33)
4) 하나님의 아들이심(34)
[1:29]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태어나며, 죄 값으로 저주를 받아 반드시 죽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실수하여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소나 양으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셨다(레 16:10, 21-22).
속죄 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므로 죄인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는데 그 속죄 제물은 참 속죄양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상징이었다.
[1:30]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한이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15절)고 말한 것이 곧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보다 여섯 달쯤 나중에 태어나셨으나 요한보다 먼저 계신 자라고 요한이 말한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한 것이다.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세례요한보다 여섯 달 쯤 후에 태어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은 영원부터 항상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계셨다.
[1:31-32]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
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이 말하되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라고 말하였다.
또 그가 증언하여 말하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 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라고 하였다.
[1:33-34]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라고 하셨다.”라
고 말하였다. 요한이 보니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물렀으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요한이 증언하였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믿어지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가 무엇인가?
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셨으므로 아담의 원죄 없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②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 한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죽고, 죽은 다음에 아무도 부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롬 1:3-4).
③ 예수님의 이적들이 증거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행10:35-38).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사 9:6, 슥 9:9).
4. 요한이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소개함
(요 1:35-42)
1) 두 제자가 요한의 말을 듣고 따라감(35-37)
2)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보고 그날 함께
거함(38-39)3) 안드레가 형제 시몬에게 전도함(40-42)
[1:35-37]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보고 말하되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다.
두 제자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신 속죄양이심을 세례 요한이 믿었으므로 기쁘고 감사는 마음으로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증언하였고, 자기 제자들이 예수
님을 따라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였다.
[1:38]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목적이 바로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라가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라고 조금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대답한 의미는,
첫째, 예수님이 계신 곳은 광야 빈들이니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둘째,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을 보고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의미이다.
셋째, 예수님이 계시는 그 곳에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원한다는 의미이다(39절 참조).
[1:39] 39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의 대답을 좋게 생각하시고 “와 보라”고 하셨고, 그들은 가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보고 그날 함께 거하였다.
그들이 가서 무엇을 보았을까? 예수님이 계신 곳은 광야 빈들이었으나 그날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구세주)로 발견하여 함께 거하였다(41절).
그러므로 그들은 전에 어떤 날보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을 것이다(눅 19:1-6참조).
[1:40-41]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다.
그가 메시야(구세주, 그리스도)를 발견한 그 기쁨을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너무너무 기뻐서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전하게 된다.
[1:42]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에게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하고 예수님께 데리고 오니 하고 데리고 예수님께로 오니 예수님께서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반석)
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신성으로, 시몬이 요한의 아들인 것과 장차 게바라고 불릴 것을 아셨다. 시몬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연 예수님은 메시야(그리스도)인 것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함(요 1:43-51)
1)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심(43-44)
2)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함(45-46)
3)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47-51)
[1:43-44]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이튿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다.
왜 예수님이 빌립을 보자마자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보시고 합당한 자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한결같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1:45]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순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러므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하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
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거나 말 한마디만 들어도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다. 예수 믿는 사람 같다.”는 소리를 들
어야 한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 뵙고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인 것을 믿었다(신 18:15, 사 9:6, 슥 9:9).
이는 빌립이 평소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성경에 약속한 메시야(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신다(시 107:9).
[1:46]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나기로 성경에 예언되었기 때문이다(미 5:2참조).
그 때에 빌립은 “와 보라.”고 말하였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는 뜻이다.
빌립은 자신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보다 나다나엘이 직접 와서 예수님을 직접 보면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빌립처럼 “우리 교회에 한번 와 보십시오.”라고 전도하는 것도 좋은 전도 방법이 될 수 있다.
[1:47]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에게 나오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나다나엘을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것을 아셨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모든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아신다.
[1:48]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여쭈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라고 말씀하셨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예수님께서 그 기도 를 통하여 나다나엘을 보셨다.
[1:49]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말씀 곧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또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신 이스라엘의 임금이심을 믿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실 것이 성경에 기록 되었으므로(사 9:6; 시 2:6 45:6-7),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가 오시면 곧 왕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1:50]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함으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여러 가지 놀라운 이적과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의미한다.
[1:51] 51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통(교제)하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한다(창 28:12; 마 27:51).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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