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째 찾아오심 (요 20:24-31)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설교
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째 찾아오심 (요 20:24-31) 고석남 목사 요한복음 강해설교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일곱 제자들이 다시 디베랴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항상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갑자기 떠나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수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시몬 베드로가 말하되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라고 말하니 다른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고 하여 디베랴 바다로 가서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어야 마땅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마땅히 그 일에 앞장서서 본을 보였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가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까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게 하였습니다.
2. 제자들이 실패하였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일곱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도중에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다가 도중에 세상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하여도 실패한다는 것을 잘 교훈하셨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실패한 제자들은 아마 어부의 생활로 되돌아간 것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날이 새어갈 때에 찾아오신 것은, 제자들이 회개함으로 심령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셨으나 제자들은 아직도 심령이 어두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심령이 어두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3. 예수님께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신 의미는 “너희가 세상으로 돌아가 성공하였느냐?”고 물어보신 것이며,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돌아간 것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없나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실패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한 것과 같고, 그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순종하여 던졌더니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제자들이 예수님이신 줄 모르고 그 말씀을 순종하였으나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알지 못하고 순종하여도 복을 받습니다.
독약은 알지 못하고 먹어도 죽고 보약은 알지 못하고 먹어도 건강에 좋은 법입니다.
4. 예수님께서 조반을 준비하여 먹여주셨습니다(7-14).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라고 말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가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고픈 사정을 다 아시고 이렇게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여 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 어리고 실수투성이지만 찾아오셔서 배고픈 제자들을 위하여 음식까지 준비하여 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하신 것은, 주님께서 주신 복을 제자들이 깨닫고 감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고기가 백 쉰 세 마리나 되었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떠난 인간의 노력은 실패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절대로 실패가 없다는 것을 잘 교훈하신 것입니다.
백쉰셋의 숫자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자음(베니 하엘로힘)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잡지 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라는 교훈을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마 4:19).
5.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셨습니다.
조반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어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고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며칠 전에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느냐(아가파오)고 두 번 물으셨으나 베드로는 두 번 다 우정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휠레오)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거룩한 사랑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우정적인 사랑을 한다고 회개하며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세 번째는 “네가 나를 우정적인 사랑을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세 번째는 우정적인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근심하면서 우정적인 사랑을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 내 큰 양을 치라(16). 내 큰 양을 먹이라(17).”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며(요일 5:3), 하나님의 양(성도)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구원하고, 믿음이 어린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마 25:37-4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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