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사울의 회심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제9장 사울의 회심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 본문 분해


1. 사울의 회심(1-19)

2. 사울이 회개한 후 즉시 전도함(20-25)

3.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함(26-31)

4. 베드로가 행한 이적과 복음전도(32-43)


■ 본문 강해


1. 사울의 회심(1-19)


1) 회심 전의 사울(1-2)


[9:1]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스데반이 거룩한 모습으로 순교하는 장면을 사울이 목격하고도 회심 전에는 주님의 제자(성도)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 전에는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중략~)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사울이 성도들을 극도로 미워하여 성도들을 당장 죽일 것처럼 위협하며 행동함으로 보는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끼게 하였다. 

사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하였다.


[9:2]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사울이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들에게 부탁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것을 요청하였다. 

이는 사울이 다메섹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 불문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는 것이었다. 

사울이 복음을 믿기 전에는 유대교만 하나님을 가장 바르게 섬기는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유대교의 이단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박해하였다.

그러나 그가 회심한 후에 말하기를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라고 고백하였다. 


2) 다메섹 도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음(3-5)


[9:3]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을 향하여 가까이 갔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광명한 빛이 사울에게 비추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시는 전조로서 초자연적인 빛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찾아오실 때 해보다 밝은 빛으로 찾아오셨다(행 26:13).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시다(요 8:12). 

사울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므로 그 영이 죽어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러나 그가 회심한 후에 말하기를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라고 고백하였다. 


2) 다메섹 도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음(3-5)


[9:3]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을 향하여 가까이 갔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광명한 빛이 사울에게 비추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시는 전조로서 초자연적인 빛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찾아오실 때 해보다 밝은 빛으로 찾아오셨다(행 26:13).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시다(요 8:12). 


사울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므로 그 영이 죽어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계시하셨다.

또 예수님은 진리의 세계를 보게 하는 빛이시다(요 9:5). 

사울이 빛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흑암 가운데 있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 표적이었다. 


[9:4-5]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사울이 해보다 더 밝은 빛(행 26:13)으로 인하여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하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하고 두 번이나 부른 것은 사울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이 주님의 음성을 확실히 듣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울이 대답하되 “주여 누구십니까?”하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직감적으로 사울 자신이 대적하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알았을 것이며 사울은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사울을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사울이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복음의 사도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3) 주님이 사울에게 지시하심(6-7)


[9:6] 6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말해줄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울이 지금까지는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죄를 범하였다. 이제 사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시내로 들어가야 하고, 시내에 들어가면 사울이 행할 일을 말해줄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9:7]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사람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4) 사울이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못함(8-9)


[9:8]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사울에게 비춘 하나님의 빛이 너무 강렬하여 사울이 시력을 잃어버렸다. 이는 사울이 그동안 영의 눈이 소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징계이다. 사울은 자신이 똑똑한 줄 알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여 예수님과 성도들을 박해하였다. 그런데 사울은 영적인 소경이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였다.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울이 이제 스스로 걸어갈 수도 없어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 걸어갈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9:9] 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이 사흘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아니하였다. 

사울이 식욕이 없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울이 지난 날 교만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성도들을 박해한 죄를 생각할 때 너무 원통하여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한 것을 의미한다. 


5) 아나니아가 안수하매 사울이 다시 보게 됨(10-19)


[9:10]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주님의 제자가 있었다. 

아나니아는 경건하여 그곳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다(행 22:12). 

주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불러 말씀하시되 “아나니아야”하시니,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주님께서 사울을 회개시켜 복음의 일꾼(사도)으로 쓰시기 위하여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려고 환상 중에 그를 부르셨다.


[9:11]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주님께서 아나니아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직가(곧은 길)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하셨다. 사울이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다 보시고 그것을 아나니아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며 찾아갈 수 있게 하셨다.

[9:12]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이 주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핍박한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에 주님께서 사울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지름길이다. 

안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9:13-14]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기를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들은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한 사실이 다메섹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사울이 성도들을 심하게 박해하여 성도들에게 많은 손해를 끼친 사람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미리 계시로 알게 하셔서(11-12절)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찾아가게 하셨다. 


[9:15]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사울을 택하여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릇이 되게 하실 것을 아나니아에게 알려주셨다.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릇은 주인이 귀하게 사용할 때 그 가치가 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① 그릇이 깨끗해야 한다. 


금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주인이 귀하게 사용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꾼과 성도들이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욕심을 버려야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다. 


② 그릇에 귀한 것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귀한 그릇도 되고 천한 그릇도 된다. 

사울이 과거에는 주님 앞에 쓸모없는 그릇이었으나 이제는 복음의 진리를 담아서 귀한 그릇으로 쓰시기 위하여 주님이 친히 찾아오시고, 그를 불러 죄를 회개시켜 눈을 밝게 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③ 그릇이 튼튼하여야 한다. 


질그릇처럼 부서지기 쉬운 그릇을 귀하게 사용할 수 없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속사람이 강건하여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충성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 3:16)라고 하였다.


[9:16]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사울이 주님을 위하여 일할 때,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주님께서 사울에게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하는 종들에게 핍박과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을 미리 사울에게 알게 하셨다. 사울이 주님을 몰랐을 때는 핍박하였으나 그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고 깨달았으므로 복음을 위하여 아무리 많은 고난을 받더라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복음이 자기 생명보다 귀한 것을 알기 때문에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아무리 큰 박해를 받아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9:17]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며 말하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고 말하였다. 사울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나니아의 안수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다시 보게 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아나니아의 안수는 주님의 은혜가 사울에게 임하는 것을 상징하였다(행 6:6절의 강해, 안수의 의미 참조). “형제 사울아” 성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이제 그리스도를 믿어 성도들의 형제가 된 것을 의미하며 아나니아가 사울을 형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사울이 오던 길에서 주님의 환상을 보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울에게 온 것을 사울에게 알려주었다. 주님은 이처럼 살아계셔서 주님이 원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며, 말씀으로 지시하시며 알게 하시는 것을 사울에게 알게 하셨다. 

사울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을 때 아나니아가 찾아와 안수함으로 예수님께서 사울을 다시 보게 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9:18]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


① 구원받은 표이다. 

세례의 의식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표(상징)로 세례를 받는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라고 하셨다. ② 죄를 깨끗이 씻었다.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깨끗이 씻었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라고 하였다. ③ 옛사람이 죽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라고 하였다(롬 6:3참조).


④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 

세례는 성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어 하나의 지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고전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9:19]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사흘 동안 금식하므로 육신이 약해졌으나 음식을 먹으니 육신이 강건하여졌다. 성도의 영혼도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강건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참조)고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원수로 여겨결박하려고 찾아갔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셔서 사울을 불러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셨다. 사울이 복음을 믿은 후 며칠 동안 다메섹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믿음 안에서 교제하였다. 2. 사울이 회개한 후 즉시 전도함(20-25)


1)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를 증거 함(20-21)


[9:20]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이 그가 반대하던 복음을 믿고 나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전파하였다.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면 당장 유대교로부터 출교당하고 죽임을 당할 위험성이 있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자기가 핍박하던 그 예수님을 증언하였다. 

복음은 이처럼 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9:21]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 던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의 전도를 듣는 사람들이 다 놀라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성도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라고 말하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사울은 자기가 반대하던 예수님을 전파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전도가 더 잘 될 줄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도의 열매가 신통치 않았다. 2) 힘을 더 얻어 다메섹에서 예수를 증언함(22)[9:22]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1절과 22절 사이에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왜냐하면 사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복음의 일꾼이 되었고, 처음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너무 부족한 것을 깨달았다(21절참조).

그러므로 사울이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하는 동안 주님께 복음의 계시를 직접 받는 큰 은혜를 받았다. 

사울이 삼 년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사울이 힘을 더 얻어 복음으로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킨 일이 22절 말씀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하였으며,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 1:17-19)라고 하였다.


3)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함(23-25)


[9:23-25]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여러 날이 지나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하였으나 그 계교(음모)가 사울에게 알려졌다. 

유대교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킴으로 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내려 피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성도를 아무리 죽이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죽지 않는다. 

사울이 전에는 성도들을 핍박하였으나 이제 사울 자신이 반대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핍박을 받아 도망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과거에 교회를 핍박한 일을 더욱 많이 회개하였을 것이다. 


3.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함(26-31)


1)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사울을 소개함(26-27)


[9:26]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 때문에 광주리를 타고 도망한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의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였다. 

사울이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였으나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으므로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사울의 제자 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사울을 두려워하였다.


[9:27]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길에서 어떻게 주님을 만나 본 것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도한 것을 말하였다. 사울이 오해를 받고 있을 때에 바나바가 그 오해를 풀어주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좋은 신앙의 동지(친구)를 만나게 하셨다.


2)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함(28-29)


[9:28-29]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다. 사울이 또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힘썼다. 


3) 형제들이 사울을 다소로 보냄(30-31)


[9:30]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다소로 보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러한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사울을 장차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위하여 연단(훈련)하시는 것이다. 


[9:31] 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리하여” 

교회를 가장 심하게 핍박하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으므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한결 평안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믿는 자들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주를 경외함”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성령의 위로” 

성도가 핍박이나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여 믿음을 지키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깨달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4. 베드로가 행한 이적과 복음전도(32-43)


1) 룻다에서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침(32-35)


[9:32-33] 32그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그때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며 전도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갔다. 

룻다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40km 지점의 샤론 평야에 있는 성읍이다.

1) 이성호 편, 성서대사전(성지사, 1982). p. 459.


사도들이 그 당시 핍박이 심하고 많은 고난이 있음에도 주님께서 주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베드로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애니아가 중풍 병으로 앓아누운 지 팔 년이 되었었다. 


[9:34] 34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가 말하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하니 중풍 병이 나아서 애니아가 곧 일어났다. 

베드로가 그와 같이 말한 것은 베드로의 생각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애니아를 낫게 하실 것을 확실히 믿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빼고 “네가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였다면 애니아의 중풍병이 낫지 않을 수 있고, 낫는다고 하더라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받아야 할 영광을 자신이 받게 되어 하나님께 무서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2) 룻다와 사론의 사람들이 주께 돌아옴(35)


[9:35] 35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애니아의 중풍 병이 나은 것을 보고 다 주님께로 돌아왔다. 

베드로를 통하여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게 한 것은 베드로가 전파하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인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 


3)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림(36-40)


[9:36-37] 36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욥바는 예루살렘 북서쪽 55km 지점의 지중해안에 있는 항구로 유명하였다(대하 2:16; 욘 1:3).


1)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자 제자가 있었는데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복음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기 때문에 자기의 물질로 다른 사람을 구제하며 선한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행한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으니 그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었다. 

믿음이 좋은 성도라도 병들 수 있고 일찍 죽기도 한다. 


[9:38] 38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팔 년 동안 앓던 애니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하였다는 소식을 욥바의 성도들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에게 지체하지 말고 속히 오라고 간청하였다.


[9:39] 39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욥바에 가니 저희가 베드로를 데리고 다락에 올라갔다. 그때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였다. 그 옷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다비자가 만든 옷들이었다. 그러므로 과부들이 그 옷들을 베드로에게 보여주며 도르가의 선행을 증언하였다.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죽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울면서 안타까워할 만큼 선한 행실을 많이 하여야 한다. [9:40] 40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기도한 것은 고요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기 위함이요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겸손한 자세로 간절히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기도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말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 기적이 일어났다. 


4)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음(41-43)


[9:41-43] 41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었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이적의 은사를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계시하셨다. 


① 사도들이 하나님의 종(일꾼)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이적을 행하도록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종(일꾼)으로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되게 하셨다. 

바울이 말하되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라고 말하였다.


②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보증한다.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복음)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보증하셨다(요10:38참조).


③ 하나님의 구원은 천국의 행복을 주신다. 

사도들이 행하는 이적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였다. 

그 행복은 성도들이 누리게 될 천국의 영원한 행복을 예표 한다.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으면 천국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영생하게 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고석남 목사 요한계시록 강해 바른복음선교회 도서출판 이엠지비 바른복음 신약성경 강해와 설교 시리즈 21

제22장 마지막 계시와 권고 고석남 목사 요한계시록 강해

제28장 바울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함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