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아시아)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제14장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아시아)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 본문 분해
1. 이고니온에서 복음전도(1-7)
2. 루스드라에서 복음전도(8-18)
3. 안디옥으로 돌아감(19-28)
■ 본문 강해
1. 이고니온에서 복음전도 사역(1-7)
1) 유다와 헬라의 많은 무리가 믿음(1)
[14:1] 1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고니온도 비시디아에 있는 도시이며 당시 루가오니아의 수도였다.
그곳에서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니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믿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이고니온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회당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가는 곳마다 항상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합류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고니온에서도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유대인과 헬라인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2) 두 사도가 주를 힘입어 복음을 증언함(2-3)
[14:2] 2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그러나 복음을 순종치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않고 반대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품어 복음을 반대하게 하였다.
복음을 반대하는 마귀의 종들은 항상 다른 사람을 선동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종들을 박해하며 악을 행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와 마귀의 방해가 항상 함께 있었다.
[14:3] 3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두 사도가 박해 중에도 그곳에 오래 머무르며 주님을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니 주님께서 사도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셨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두 사도는 바울과 바나바이다. 성령께서 이 두 사람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로 세우셨다(행 13:2-3).
이고니온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박해가 있었으나 두 사도가 그것을 참고 오래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힘을 주셔서 사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고, 주님께서 사도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셨다.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주님께서 두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고, 주님은 그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증언하셨다.
사도들이 행한 표적과 기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이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증거였다.
3)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함(4-5)
[14:4] 4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고니온 성내의 무리가 나뉘어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었다.
이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항상 일어나는 현상으로 아무리 훌륭한 사도가 복음을 전하여도 듣는 사람들이 다 믿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두 부류가 생긴다.
[14:5] 5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두 사도를 모욕하며“
‘모욕하며(ὑβρίσαι,휘브리사이)’는 ‘비난하다, 부끄럽게 하다’의 뜻이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조롱하며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언사로 비난하였다.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돌로 치는 행위는 유대인들이 죄인을 정죄하여 죽이는 한 방법이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동참한 바울이 그 자신도 똑같은 처지에 있게 되었으므로 아마 바울이 그 일을 생각하며 많이 회개하였을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이러한 핍박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0-1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두 사도가 루가오니아로 가서 전도함(6-7)
[14:6-7] 6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두 사도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핍박이 너무 심하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라고 하셨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한 일도 있다(고후 11:32-33). 두 사도가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자신들의 목숨보다 귀중하기 때문이다.
2. 루스드라에서 행한 사역(8-18)
1)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자를 고침(8-10)
[14:8] 8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며 나면서부터 아담의 원죄가 있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나면서부터 불행한 환경이나 불행한 상태로 태어날 수 있다.
[14:9-10] 9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앉은뱅이)이 된 자가 불행하게 태어났으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된 것은 큰 복이었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죄 때문인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경청하면서 죄인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바울이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확실히 깨닫고 큰 소리로 말하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게 되었다.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비천한 자를 구원하여 고쳐주신 것이 너무 감하고 기뻐서 뛰면서 걸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잘 믿는 줄로 알고 교만하여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반대하고 두 사도를 박해하였으나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2) 두 사도를 신으로 알고 제사하려고 함(11-13)[14:11] 11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 곧 바울이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일어나 뛰며 걷는 것을 보고 그들이 너무 놀라고 신기하여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말하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라고 하였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사람에게는 종교적 본능이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떤 절대자(하나님, 신)를 의지하려는 본성이 있는데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절대자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상상한 신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특히 헬라(그리스) 문화권에는 그렇게 만들어낸 신들과 신화가 많이 있었다. 그러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루가오니아 사람들이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라고 말하였다. [14:12] 12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그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허르메스라고 하였다. 제우스(Ζεύς, 쥬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섬기는 신중 최고의 신이다. 허르메스(Ἑρμῆς,헤르메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섬기는 제우스 신의 사자(대변자)를 의미한다. 무리가 두 사도를 통하여 일어난 이적이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알았으나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자기들이 섬기는 신중 최고의 신과 그 대변인이 내려온 줄로 착각하였다.
[14:13] 13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두 사도에게 제사하려고 하였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우상을 섬기기는 하지만 그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정성이 있었다.
참 하나님 곧 창조주이시며 구원의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과연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3) 두 사도가 겨우 말림(14)
[14:14]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 제사를 받는다면 일시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큰 죄가 되며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헤롯이 연설할 때 백성들이 크게 말하되 이는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때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었다(행 12:23).
그러므로 두 사도가 너무 놀라고 큰 분노를 느껴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4) 진리를 증거 함(15-18)
[14:15]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두 사도가 소리 질러 큰 소리로 말하되 “여러분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는 결코 신들이 아니며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라고 하였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바나바와 바울에게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치는 이적이 일어나자 무리가 두 사도를 신으로 생각하며 두 사도에게 제사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두 사도가 우리는 결코 신들이 아니며, 여러분과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밝히고, 복음 전하는 목적을 말하였다.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이런 헛된 일이란 우상을 섬기는 일이다.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이며 헛된 일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항상 살아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96:5)라고 하셨고,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렘 10:11)라고 하셨다.
[14:16]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지나간 세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전의 시대를 의미한다.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세상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며 우상을 섬기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버려두셨다.
그러나 그 일들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14:17]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를 통하여 자기를 증언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고 곡식과 과일들이 결실하게 하셔서 사람들이 먹고 마심으로 기뻐하며 만족하게 하신 일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9-20)라고 말씀하셨다.
[14:18]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에게 제사를 하려고 하는 루스드라 사람들을 힘들게 겨우 말려 하지못하게 하였다.
3. 안디옥으로 돌아감(19-28)
1) 바울을 돌로쳐서 죽은 줄로 알고 버림(19)
[14:19]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처음에는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생각하고 제사까지 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충동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금방 원수로 변하여 돌로 치고,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던졌다.
2)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감(20-21상)
[14:20] 20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하나님의 이적으로 바울이 일어나 다시 루스드라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다.
복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능력으로 죽을 고비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3) 제1차선교를 마치고 돌아감(21하-28)
① 제자들을 권면함(21하-22)
[14:21]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죽음에서 겨우 살아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니 하나님께서 충성된 두 사도에게 함께 하셔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있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으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은 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다.
두 사도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며 이미 주님께 돌아온 자들이 과연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농부들도 씨만 뿌려 놓고 돌보지 않는다면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주 가서 돌보아야 한다.
하물며 복음의 씨를 뿌린 다음에도 다시 찾아가 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4:22]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은, 죽음이 닥쳐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선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믿음에 거하는 것”은, 믿음으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니 곧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으로는 믿는데 행동이 따라가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다(약 2:26).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환난과 박해 중에도 진실한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마귀가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불신자가 처음 복음을 믿을 때도 환난과 핍박이 있고, 이미 복음을 믿는 성도들이 믿음을 지킬 때도 많은 환난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②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움(23)
[14:23] 23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장로들은 단순히 봉사와 치리(교회를 다스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목회자(교역자)와 같은 신분이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장로라고 하였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 5:1)라고 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반드시 교회를 인도하며 다스리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사도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금식기도를 하였다.
“그들이 믿은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장로들과 교회를 주님께 돌보시도록 위탁하였다.
장로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마귀에게 속기 쉬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③ 안디옥으로 돌아가 보고함(24-28)
[14:24-26] 24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을 한 지역은 ①안디옥(수리아) ⟶ ②살라미(구브로) ⟶ ③바보(구브로) ⟶ ④버가(밤빌리아) ⟶ ⑤안디옥(비시디아) ⟶ ⑥이고니온(비시디아) ⟶ ⑦루스드라 ⟶ ⑧더베까지였다. 돌아갈 때는 더베에서 출발하여 역순으로 돌아가면서 교회를 돌보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 순서를 살펴보면 ①더베 ⟶ ②루스드라 ⟶ ③이고니온 ⟶ ④안디옥(비시디아) ⟶ ⑤버가 ⟶ 구브로를 들르지 않고 ⟶ ⑥안디옥(수리아)으로 돌아갔다.
안디옥(수리아)은 두 사도가 이룬 선교사역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다.
[14:27] 27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두 사도가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교회를 모아 두 사도의 선교사역에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은혜롭게 보고하였다.
두 사도가 자기들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것을 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4:28] 28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두 사도가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까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다.
두 사도의 제1차 선교여행은 A.D. 45-A.D. 48년경1)1) 할레이저(박양조 역), 최신 성서핸드북(기독교문사, 1986). P. 601 이라고 한다.
두 사도가 제1차 선교사역에 너무 많은 수고로 상당한 기간의 휴양이 필요하였을 것이며, 또 안디옥 교회에서도 복음 사역에 동참할 필요가 있어서 오랫동안 안디옥에 있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