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바울의 제3차 선교 여행(마게도냐) 고석남 목사 사도행전 강해
제20장 바울의 제3차 선교 여행(마게도냐) 고석남 목사 사도행정 강해
■ 본문 분해
1.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석 달을 보냄(1-6)
2. 바울이 드로아에서 강론함(7-12)
3. 바울이 밀레도에서 강론함(13-38)
■ 본문 강해
1.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석 달을 보냄(1-6) 1) 바울이 마게도냐로 감(1-3)
[20:1] 1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가 일으킨 소요가 그치니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면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
바울이 에베소에 더 머무는 것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나 바울의 선교사역에 유익이 없다고 판단되어 제자들과 작별하고 떠났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고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는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였다.
이것이 주님께 부름을 받은 종의 바른 자세이다.
[20:2-3] 2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권하고(παρακαλέω,파라칼레오)”는,
‘훈계하다, 위로하다, 기도하다.’의 뜻이다.
바울이 전에 복음을 전하였던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방으로 다녀가며 제자들에게 많은 환난 중에도 믿음에 굳게 서 있도록 여러 말로 위로하고 권면하였을 것이다.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바울이 헬라에 이르러 그곳에 석 달을 있었으며 그 기간에 바울이 고린도후서와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하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려고 그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의 공모를 바울에게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바울이 고린도에서 마게도냐로 돌아가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작정하였다(행 19:21; 20:16).
바울의 이번 여정은 그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 교회에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한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것이다.
고린도에서 기록한 로마서 15:25에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 때 이방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연보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도록 하였다.
2) 아시아까지 바울과 동행하는 자들(4-5)
[20:4] 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바울과 함께 가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 연보를 한 각 지역 교회의 대표자들이다.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 중에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고린도후서 8:10-21에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다.
[20:5] 5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그들은 먼저 가서”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먼저 드로아에 가서 바울 일행을 기다렸다.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라고 기록한 것을 보아 바울 일행 가운데는 본서를 기록한 누가가 바울과 동행한 것을 알 수 있다(행 21:18참조).
3) 드로아에서 칠일 동안 머무름(6)
[20:6] 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과 그 일행이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물렀다.
2. 바울이 드로아에서 강론함(7-12)
1) 이튿날 떠나려고 밤중까지 강론함(7-8)
[20:7-8] 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그 주간의 첫날에” 그 주간의 첫날은 주일이다. 기독교는 사도 시대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다.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주의 날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여 성찬 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모였던 것 같다.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데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였고 회중이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켜 놓았다. 바울은 이처럼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데 충성을 다하였다.
2) 유두고가 떨어져 죽음(9)
[20:9] 9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이름이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어깊이 졸다가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좋은 교훈이 있다.
1) 성도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성도가 창에 걸터앉았다는 것은, 성도의 마음이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기 쉽다. 신앙 선배들의 말씀에 예배할 때 앞자리는 은혜받는 금 자리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들어야 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라고 하셨다.
유두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창에 걸터앉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졸다가 떨어져 죽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정신을 차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3) 바울의 말대로 유두고가 살아남(10-12)
[20:10]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은 것은, 죽은 유두고를 불쌍히 여기며 자기 몸처럼 사랑한 것을 의미한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떠들지 말라.”고 말한 것은, 바울의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떠들고 소란하면 예배에 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그에게 있다.”라고 말한 것은,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유두고가 살아날 것을 확신하고 말한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복음을 위하여 충성함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롬 8:29참조).
[20:11] 11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바울이 다시 다락에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날이 새기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의 말씀을 나누고 떠났다.
바울이 다음날 먼 여행을 떠나야 함에도 날이 새기까지 말씀을 전한 바울의 열정을 성도들이 본받아야 한다.
[20:12] 12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죽었던 유두고가 살아났으므로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고, 또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으니 그 기쁨은 더욱더 컸을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드로아의 성도들에게 오랫동안 큰 기쁨과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3. 바울이 밀레도에서 강론함(13-38)
1) 바울이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감(13-15)
[20:13] 13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은 일행들에게 배를 타고 앗소로 가게 하였고, 바울 자신은 걸어서 앗소까지 가기로 작정하였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바울은 몸이 약하여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육로로 걸어가는 것이 건강상 유익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바울이 앗소까지 걸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20:14] 14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바울이 앗소에서 일행들을 만나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갔다.
앗소는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의 항구이며 드로아에서 20km 남쪽에 있다1).
미둘레네는 에게해에 있는 작은 섬 레스보스의 수도였고, 소아시아의 본도의 서쪽 17km 지점에 위치하였다2).
[20:15] 15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도착하였다.
기오는 에게해의 소아시아 측에 있는 섬이며, 남북 56km, 동서 12-20km이다1).
사모는 소아시아의 서안에서 불과 2km떨어진 에게 해의 작은 섬이며 동서 38km, 주위는 약 130km이다2).
밀레도는 소아시아의 서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이며 에베소의 남쪽 45km지점에 위치하였다3).
바울이 이렇게 여러 지역을 들른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2)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청함(16-17)
[20:16] 16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항해하려고 하였다.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서둘렀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명절이어서 이스라엘 전국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20:17]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배가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다.
이는 바울이 에베소에 들르지 않고 밀레도로 왔기 때문에 에베소 장로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3) 바울의 설교(18-38)
① 바울이 겸손히 회개와 믿음을 증언하였음(18-21)
[20:18]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항상 교인들 앞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고, 그것을 에베소 장로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말하였고, 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라고 말하였다. 복음의 일꾼인 교역자들이 바울처럼 교인들 앞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야 복음 사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20:19]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바울은 항상 겸손하였다. 바울이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말하였다(딤전 1:15). 바울이 겸손한 사람이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발견하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고전 15:9; 엡 3:8). 바울이 눈물을 흘리는 고난 중에도 잘 참고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바울은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였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고난이 많기 때문에 고난을 참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20:20]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유익한 것”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을 말한다.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으로 유익한것은 무엇이든지 바울이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성도들에게 전하고 가르쳤다.
바울은 진리를 증언할 때에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다 전하며 가르쳤다.
[20:21]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항상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이 반대할 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주님을 소개하며 영접할 준비로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다(마 3: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핵심은, 첫째,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신 것과 둘째, 부활로 십자가 대속을 완성하시고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뿐이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라고 말씀하셨다.
② 사명을 위하여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22-27)
[20:22]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못하노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바울이 이제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으로 간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그곳에서 어떤 위험한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더라도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20:23]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바울에게 증언하기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미 순교를 각오하고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20:24]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도를 위하여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여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바울이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처럼 힘써 달려간다는 의미이다.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충성하였다.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주님의 종들은 바울처럼 투철한 사명감으로 복음을 증언하여야 한다.
[20:25]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내가 너희들 가운데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안다.”라고 말하였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고 있었다.
[20:26-27]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모든 사람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죽음(멸망)을 상징한다(겔 3:17-18참조).
바울이 꺼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곧 복음을 다 전하였으므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당당히 말하였다.
③ 교회를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28-38)
[20:28]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조심하라”고 말하였다.
교회의 일꾼들이 조심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아 자기 자신들의 영혼을 망치고, 온 양떼 곧 성도들의 영혼을 망치게 된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라고 말하였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바울이 장로들에게 말하되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라고 말하였다.
사도 시대의 장로들은 교회의 감독자요 목사였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에 모든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문안하면서 목사와 장로는 빠져있었다(빌 1:1).
그 이유는 감독들이 곧 목사요 장로였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라고 하였다(벧전 5:1).
목사와 장로를 감독자라고 한 것은 목사와 장로가 교회 안에 죄와 거짓 교훈이 들어오지 않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교회는 하나님(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는 물론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성도들을 주님의 양으로 생각하고 목사와 장로들이 주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하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보시고 베드로가 대답하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20:29]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사나운 이리” 거짓 선지자들이 흉악한 이리이다. 사나운 이리가 양들을 잡아먹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다른 복음으로 주님의 양 떼를 미혹하여 죽이게 될 것을 바울이 경고하였다. [20:30]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또한 교회 안에서 지도자들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바울이 미리 경고하였다.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
“어그러진 말(διαστρέφω 디아스트레포)”은, ‘왜곡하다’,‘잘못 해석하다’,‘부패하다’의 뜻이다.
거짓 선지자는 복음을 왜곡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양들을 자기 양으로 만들어 자기 유익을 취한다.
[20:31]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여러분이 일깨어”
“일깨어(γρηγορεύω,그레고류오)”는 ‘깨어있다, 정신을 차리다, 경계하다.’의 뜻이다.
성도가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바울 자신이 삼 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잘 기억하라고 당부하였다.
바울이 그처럼 주님의 사도로서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였으며 성도들을 바른 믿음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듣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배운 진리가 생각나야 그 진리를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한 생활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성도 자신의 인격이 거룩하게 된다.
[20:32]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바울이 이제 떠나가면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29절), 바울은 다시 에베소 성도들을 볼 수 없는 상황(25절)에서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주님께 부탁하였다.
성도가 주님 안에 있으면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한다.
다윗이 여호와를 찬양하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라고 말씀하였다.
또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성령의 검이기 때문이다(엡 6:1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기업(κληρονομία,클레로노미아)은, ‘세습재산, 소유물’을 의미한다.
기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값없이 물려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내세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성도가 깨어있고 환난 중에도 주님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심령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천국도 의미한다.
[20:33]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물질을 탐하면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삯꾼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왕상 17:6, 15-16).
예수님께서도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0:10).
[20:34-35]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이 여러 이방 나라에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 손으로 일하여 자신과 일행에 필요한 것을 충당하였다.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교인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교역자가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역자가 물질을 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다.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하였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였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이 도와줄 때 기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세상에서 잠깐 좋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그 상급이 천국에 있고 영원하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하셨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 28:27)라고 말씀하셨다.
[20:36-38] 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바울이 이 모든 권면의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모두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또 바울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바울을 전송하였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