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복음에 빚진 바울 고석남 목사 로마서 강해
제1장 복음에 빚진 바울 고석남 목사 로마서 강해
■ 본문 분해
1. 문안(1-7)
2.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함(8-17)
3.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18-32)
■ 본문 강해
1. 문안(1-7)
1) 발신자(1-5)
[1:1]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예수(jIhsou '" 예수스)’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마 1:21).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천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준 이름이다(마 1:20-21; 눅 1:31참조).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가?
① 예수님은 죄가 없는 사람으로 오셨다.
모든 인류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므로 날 때부터 죄인이다.
죄인이 죄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속죄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드리는 소나 양, 염소의 속죄 제물들은 참 속죄 제물이 아니고 참 속죄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러므로 소나 양, 염소로 드리는 속죄 제사는 죄인들을 온전케 할 수 없었다(히 9:9, 10:1).
죄인들의 죄를 온전히 담당하려면 죄 없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동정녀 탄생으로 죄가 없이 탄생하셨고, 평생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벧전 2:2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흠 없는 완전한 속죄 제물이다(요 1:29).
②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율법에 따라 드리는 속죄양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시려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셔야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이므로 죽지 않아도 되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고후 5:14-15).
③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죄 없는 사람이면서 또한 하나님이시다(롬 9:5; 요일 5:20).
그러므로 예수님 한 분이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하여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단번에 담당하실 수 있다.
④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증거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고 하였다.
‘그리스도(Cristo v"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중요한 세 직분, 곧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을 세울 때에 거룩한 기름을 부어 세웠다(출 30:30; 왕상 19:16).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세 직분을 가지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① 예수님은 선지자이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삼 년 반 동안 친히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②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
③ 예수님은 왕이시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도 왕의 권세로 만물을 복종하게 하셨다.
특히 예수님께서 왕으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실 것이다.
‘종(δοῦλος 둘로스)’은, 오직 주인을 위하여 일하며,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성하였다.
‘바울(Παῦλος 파울로스)’은, ‘작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희망이란 뜻)이었다. 사울이 처음에는 복음을 믿지 않고 성도들을 심히 핍박하였다.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후에 지극히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고(고전 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였으며(엡 3:8),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였다(딤전 1:15).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성도들은 바울과 같이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마땅하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행 9:4).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았다.’라는 뜻이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불러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행 1:8).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복음(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은,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이 가장 좋은 소식이며 하나님의 복음이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구별하여 세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구별하여 세우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1:2]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다(창 3:15).
②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다(사 7:14).
③ 속죄양으로 죽어야 한다(창 3:21; 사 53:5,10).
④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한다(사 53:6).
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다(시 16:10).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이것들 외에도 많은 일들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
[1:3-4]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고, 성결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다.
의심 많은 도마가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 20:28)라고 고백하였다.
[1:5]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타나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고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주셨다(행 9:4, 13: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복음을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
2) 수신자(6-7)
[1:6] 6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교회의 성도들도 이방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성도들을 사셔서 자기 소유로 삼으셨다(행 20:28; 고전 6:19-20).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몸과 마음이 그리스도의 것인 줄 알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롬 14:8).
[1:7]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심으로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고(엡 1: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양으로 죽게 하셔서 성도들을 죄에서 구원하셨다(엡 1:7).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섬겨야 한다(마 22:37).
‘성도(ἅγιος 하기오스)’는,
‘구별된 사람, 순결한 사람, 봉헌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온전히 구별되도록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ca vri"=카리스)’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도는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고, 영생 얻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은혜를 우리 성도들에게 값없이 주셨다.
‘평강(εἰρήνη 에이레네)’은, 심령이 평안하고 기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에게는 그 은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
.2.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 원함(8-17)
1)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함(8-10)
[1:8] 8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고(마 8:10),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셨다(마 15:28).
그러므로 성도들이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지 말고, 선한 말과 행동을 통하여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1:9-10] 9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심령(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한다.
바울이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다.
바울이 그의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증인이 되신다고 말하면서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좋은 길이 열리기를 간구한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였다.
이는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었다.
2) 로마에 가려는 목적(11-13)
[1:11-13] 11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①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위함이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11절).
로마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여행 중에 복음을 들어 믿고 로마로 돌아가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다(행 2:5-11참조).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잘 전하고 가르쳐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② 로마교회의 신앙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2절).
바울이 그들에게 가서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 그들의 신앙과 바울의 신앙이 일치되는 것을 확인하고 피차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③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13절).
로마는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여러 나라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로마에 가서 여러 지역의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이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계획하였으나 지금까지는 그 길이 열리지 않았다.
3) 복음에 빚진 자(14-17)
[1:14-15] 14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내가 빚진 자라”
사람이 어려운 경제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빚이다.
그러므로 빚진 자는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하며 빨리 갚을수록 마음이 편하다.
바울이 항상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 곧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것이 죽어 멸망 받을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다. 복음을 믿어 값없이 구원받은 사도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은 복음의 빚을 갚도록 명령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말씀하셨고, 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7-8)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 복음의 빚을 진 제자들에게 복음의 빚을 갚도록 말씀하신 것과 같다. 빚진 자는 그 채주에게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라고 말하였다.또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할 수만 있으면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려고 힘썼다.
[1:16]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사도 시대는 기독교가 심히 핍박을 받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꺼리고 믿음이 어린 성도는 복음을 믿으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여 믿음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요 19:38참조).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이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고전 1:18).
바울은 누구든지 복음을 믿으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구원을 얻는다고 담대히 증거 하였다.
[1:17]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인들은 자기 죄값으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단번에 죄 사함을 얻어 의롭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받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그만큼 믿음이 자라난다. 이것이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이 점점 자라나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3.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18-32)1)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18-23)
[1:18]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불의(不義)’는, 옳지 않은 것이니, 곧 양심을 속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이 불의이다.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진리(ἀλήθεια 알레데이아)’는,
‘참된 것, 진실성’이니, 예수님이 진리이며(요 14:6), 성령이 진리이며(요 15:26), 하나님이 진리이며(시 31:5),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요 17:17).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왜 불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가?,
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다.
불신자들은 욕심을 따라 살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면 그들의 욕심을 채울 수 없으므로 불의로 진리를 반대한다(행 16:19-21).
예컨대 주일에도 장사하여 돈을 벌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한다.
② 악한 행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의 악한 행위가 성도들의 선한 행위로 인하여 드러나기 때문에 성도들을 미워하며 진리를 반대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성도들을 핍박한다.
③ 진리가 세상 풍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 풍습은 우상을 섬기고 미신을 따르며 타락된 세상 문화를 따라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들을 죄라고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반대한다.
[1:19-20]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알만한 증거를 보여주셨다.
① 양심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누구나 죄를 범하면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아 괴롭고 마음이 불안하게 된다.
사람이 죄를 범하였더라도 자기 양심에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고 양심에 가책을 받을 때도 그 고통을 피하려고 노력하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양심을 통하여 책망하시며 고통의 벌을 주시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② 우주 만물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영원하신 능력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
자연의 신비함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어느 정도 알게 하셨다(시 8:1,3).
③ 자연적인 재앙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대홍수나 큰 지진, 큰 태풍 등을 통하여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 알게 하셨다.
④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알게 하셨다.
인간의 역사는 일반적으로는 악한 사람이나 악한 나라가 벌을 받아 망하고, 선한 사람과 선한 나라는 복을 받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악을 미워하여 심판하시고 선을 기뻐하시는 것을 사람이 어느 정도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핑계할 수 없다.
[1:21-23]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줄로 알지만, 그들이 참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이 미련하고 어두워진다.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들과 짐승들과 심지어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2) 악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버려두심(24-32)
[1:24-25]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운 행동을 하도록 버려두신다.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마귀가 그 사람의마음에서 정욕이 나오도록 역사(공작)하여 그 사람이 정욕을 따라 죄를 범하게 한다(요 8:44).
정욕을 따라 행하는 대표적인 죄가 간음죄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인 간음이고, 우상을 섬기는 자는 육체적 간음죄에도 빠지기 쉽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하나님만 영원히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돌리기 때문에 악한 죄이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진노하신다.
[1:26-27] 26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하나님을 떠나면 여인들도 부끄러운 욕심에 사로잡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여성의 동성연애), 남자들도 순리대로 행동하지 않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남성의 동성연애)을 한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음욕이 불같이 일어나 더럽고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더러운 행동에 벌을 내려 그들이 상당한 벌을 받게 하신다. 어느 시대에나 음란방탕하고 동성연애를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서운 병으로 벌을 내리신다. [1:28-29]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불신자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은 무슨 일을 하여도 마음에 만족이 없다.
이것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기쁨이 없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은 마귀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따라 옳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된다.
‘불의(a jdiki va=아디키아)’
는 옳지 않은 것이니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불의는 죄이며 반드시 하나님께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추악(ponhriva=포네리아)’은 악한 행동을 말한다.
‘탐욕(pleonexi va=프레오네크시아)’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악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3).
‘악의(kaki va 카키아)’는, 악한 생각을 하는것이다.
악한 생각에서 악한 말과 악한 행동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생각을 버리고. 항상 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시기(fqo vno" 프도노스)’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나 자기보다 잘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고,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종으로 팔았으며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죽이게 하였다.
시기하는 자는 자기를 망하게 하는 어리석은 자요(욥 5:2), 자기 뼈를 썩게 하는 자이다(잠 14:30).
‘살인(fovno" 포노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장 악한 죄이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다(요일 3:15).‘분쟁(e[ri" 에리스)’은, 다투고 싸우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욕심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싸운다. 그러나 성도는 서로 양보하고 화평을 도모하여야 한다.
‘사기(do vlo" 도로스)’는,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남을 속이는 것이다.
성도는 항상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악독(kakoh vqeia 카코에데이아)’은, 원한과 앙심을 품고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성도는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오히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여야 한다.
‘수군수군 하는 자(yiquristh v" 프시뒤리스테스)’는, 다른 사람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담하는 자이다.
[1:30]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불신자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은 무슨 일을 하여도 마음에 만족이 없다.
이것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기쁨이 없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은 마귀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따라 옳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된다.
‘불의(ajdiki va 아디키아)’는 옳지 않은 것이니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불의는 죄이며 반드시 하나님께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추악(ponhri va 포네리아)’은 악한 행동을 말한다.
‘탐욕(pleonexi va 프레오네크시아)’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악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3).
‘비방하는 자(κατάλαλος 카타라로스)’
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고 비난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7:1).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θεοστυγής 데오스튀게스)’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이다.
‘능욕하는 자(ὑβριστής 휘브리스테스)’는, 비난하는 자, 해를 끼치는 자, 오만하고 무례한 자이다.
‘교만한 자(ὑπερήφανος 휘페레파노스)’는 건방지고 교만한 자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시 10:4),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자랑하는 자(ἀλαζών 아라존)’는, 허풍을 떨며 자기 자랑을 하는 자이다.
성도는 자기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겸손하여야 한다.
‘악을 도모하는 자(ἐφευρετής κακός 엡휴레테스 카코스)’는,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려고 계획하는 자이다.
성도는 악을 도모하지 말고 선을 도모하여야 한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γονεύς ἀπειθής 고뉴스 아페이데스)’는, 부모를 반항하며 거역하는 자이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에게 유익한 말을 하므로 부모를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교만한 자는 부모의 말보다 자기 생각이 옳은 줄 알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거역한다.
[1:31]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우매한 자(ἀσύνετος 아쉬네토스)’는, 지각이 없고 어리석은 자이니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나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우매한 자이다.
또 전도를 받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가 우매한 자이다.
‘배약하는 자(ἀσύνθετος 아쉰데토스)’는, 약속을 배반하는 자이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배반하는 것은 대단히 큰 죄이다.
오늘날 하나님께 결혼 서약을 하고 그 약속을 배반하여 이혼하는 것은 큰 죄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헌금이나 교회 봉사를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속이는 죄이다.
‘무정한 자(ἄστοργος 아스톨고스)’는, 인정이 없고 긍휼이 없는 자를 말한다.
긍휼이 없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다(약 2:13참조).
‘무자비한 자(ἀνελεήμων 아네레에몬)’는 잔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마귀는 잔인하여 처음부터 살인을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사람은 마귀의 종들이다.
[1:32]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악한 일들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신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악을 행할 뿐 아니라 그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을 옳다고 말한다.
불신자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악을 행하는 사람의 행위도 옳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양심을 버리고 욕심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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