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하나님의 위로 고석남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제1장 하나님의 위로
■ 본문 분해
1. 문안(1-2)
2.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함(3-7)
3. 하나님만 의뢰하라(8-11)
4.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계획을 변경함(12-17)
5.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됨(18-22)
6. 고린도 교회에 다시 가지 않은 이유(23-24)
■ 본문 강해
1. 문안 인사(1-3)
1) 기록한 사람(1상)
2) 편지를 받는 사람(1하)
3) 문안 인사(2)
[1:1-2]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 기록한 사람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바울(당시는 사울)이 처음에는 복음을 믿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믿는 성도들을 심히 핍박하였다.
그가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대제사장의 권세와 위임을 받아 일행과 함께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시고 사울을 회개시켜 사도가 되게 하셨다(행 9:1-5).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타나 사울을 불러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보내심을 받았다(행 9:15).
바울이 주님의 부름을 받고 회개한 후 사도로서 일생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사울이 회개하고 사도가 된 후 이름을 ‘바울’로 개명하였다.
‘사울’은 희망이라는 뜻인데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고친 것은 그가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사울이 예수님을 발견한 후 그의 인격이 변화되어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라고 말하였으며,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엡 3:8)라고 하였다.
그가 순교하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기록하였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발견한 자는 바울과 같이 겸손한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이 정상이다.
지극히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발견한 자라면, 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너무 더러운 죄인 것을 알고 회개한 자라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2) 편지를 받는 사람.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 고린도후서를 편지 형식으로 써서 보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예수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셨고(마 16:18, 행 20:2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시다(마 16:16; 요 20:28 참조).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이 수신자를 교회의 성도로 제한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없으면 들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짐승이 알아들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새 생명을 받은 성도, 곧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중생한) 사람이라야 들을 수 있다.
1) 성도가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ἅγιος, 하기오스)’는,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을 의미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순결한 인격으로 변화되어 순결(깨끗)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깨끗한 생활은 욕심을 버리고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생활이다.
2) 성도는 거룩한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
그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생명(새 생명)이다.
그 새 생명은 본성적으로 죄를 싫어하며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신자와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말씀하셨다.
또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존귀와 영광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롬 14:18 참조).
(3) 문안 인사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편지형식으로 기록할 때마다 편지 앞부분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문안 인사를 하였다.
‘은혜(카리스)’는 ‘호의, 선물, 자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신령한 선물이다(롬 3:24).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엡 1:7)과 영생을 얻는 것(요 3:16)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천국의 기업을 받는 것(롬 8:17; 요 14:3)이 하나님께서 호의로 성도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들이다.
‘
평강(에이레네)’는,
‘평화, 고요, 하나가 됨, 안식’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성도의 심령은 항상 평화와 안식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
1) 성도는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생 감옥살이할 죄수가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다면 대단히 기쁠 것이다.
하물며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죄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단번에 죄를 용서받아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된 성도의 심령에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있어야 한다.
2)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도는 영생을 얻었으므로 몸이 죽어도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고, 세상 마지막에는 몸이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의 심령에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있다.
병들어 죽을 사람이 그 병을 고쳐도 대단히 기쁠 것이다.
하물며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는가.
3)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자녀만 되어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뻐하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으며 살게 되었으니 어찌 그 심령에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없을 수 있겠는가!
4)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고난이 많은 이 세상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아 그곳에서 영생하는 복락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므로 심령에 큰 기쁨과 평화가 있다.
2.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함(3-7)
[1:3-4]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찬송하리로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찬송은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자비(οἰκτιρμός 오이크틸모스)’는 ‘동정, 불쌍히 여김’을 의미한다.
멸망을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였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성도가 믿을 지키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성도)들의 사정을 다 아시고 위로해 주신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 믿음을 지키는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는 성도는 아무리 큰 환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를 위로해 주시는 것은, 그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며 하나님께 받은 그 위로로써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1:5]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스도는 특히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다.
사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사도들이 고난을 많이 받은 것만큼 하나님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히 받았다.
사도 바울이 많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체험하였으므로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할 수 있었다.
[1:6]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을 받는 것도 성도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며, 혹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도 성도들의 위로를 위함이다.
하나님의 위로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속에 역사하여 바울이 받는 것 같은 고난을 그들도 견디게 하려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성도는 환난 중에도 잘 견디며 믿음을 지킨다.
[1:7]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 교회를 위한 바울의 소망이 견고하다고 말한다.
이는 고린도 교회가 고난에 참여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위로에도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때문에 믿음이 견고하게 되고, 어떤 고난이 와도 능히 그 고난을 견디며 믿음을 지킬 수 있다.
3. 하나님만 의뢰하라(8-11)
[1:8-9]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행 14:19).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처럼 큰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은 그가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다.
[1:10] 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이 큰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위로)를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후에도 복음을 전하다가 사망의 환난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11] 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바울이)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하나님의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다.
4.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계획을 변경함(12-17)
[1:12] 12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거룩함(ἁπλότης, 하플로테스)’은,
‘욕심이 없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진실함(εἰλικρίνεια, 에일리크리네이아)’은,
‘성실함, 진실함’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하였다고 말한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다(엡 1:1).
그러므로 성도가 거룩함과 진실을 버리면 마귀의 종이 된다(요 8:44).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육체의 욕심을 위하여 사람의 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복음의 진리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하였다.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선한 양심을 따라 행하였다(행 23:1).
성도의 양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히 9:14),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선한 양심이다(롬 9:1-2참조).
그러므로 성도가 선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한다(딤전 1:19).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였다.
[1:13-14] 13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너희가 읽고 아는 것“
바울이 전해준 복음의 진리를 말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복음의 진리를 말로 전하고 가르쳤으며,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여 보낸 것을 그들이 읽어 알고 있다.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에 대하여 대강 아는 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일꾼)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일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의 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이다.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날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자랑이 된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곧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또 그날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랑이 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준 스승이기 때문이다.
[1:15-16] 15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바울이 14절에서 말한 것 곧 “주 예수의 날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서로 자랑이 될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가 두 번 은혜를 얻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먼저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을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다.
[1:17] 17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바울이 그러한 계획을 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겠느냐고 말한다.
바울이 그러한 계획을 할 때에 육체의 편리를 따라 ‘예, 예’ 하고,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있었겠느냐?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바울이 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이 달라져서 바울이 마게도냐에 갔다가 거기서 고린도로 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유대로 가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고전 16:5-7참조).
하나님의 일꾼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계획한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이 달라져 부득이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성도들이 이해하여야 한다.
5.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됨(18-22)
[1:18] 18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바울이 고린도 방문계획을 변경한 일을 구실 삼아 고린도의 어떤 사람들이 “바울은 진실하지 못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도 믿을 수 없다.”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바울이 단호하게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말씀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다”라고 말하였다.[1:19] 19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바울은 자신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진실하셔서“예”하고 “아니라” 하신 일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께 “예”하고 온전히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게 모든 일을 하였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1:20] 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복음)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으로 받아들여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아멘”은 ‘진실하다, 찬동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약속(복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1:21-22] 21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소망을 견고하게 하시고, 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게 하셨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소망을 견고하게 하셨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인(印)을 치는 것은 “약속이나 보증, 또는 소유권”을 확증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성도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인치신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고전 3:23)라고 하셨다(벧전 2:9 참조).
우리 성도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믿어지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보증이다.
6. 고린도 교회에 다시 가지 않은 이유(23-24)
[1:23] 23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바울이 자신의 목숨(ψυχή, 프쉬케)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며 진실하게 말하되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었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미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그들과 은혜를 나누었다(행 18:11).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은혜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두 번째 방문계획을 세웠다(15절).
그러나 바울이 그 계획을 세울 때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범죄 사실이 드러났다.
그때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면 그들을 벌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방문계획을 취소하였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아끼려 함이었다.
[1:24] 24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직 고린도 교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고 힘썼다.
이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믿음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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