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방언과 예언 고석남 목사 고린도전서 강해
■ 본문 분해
1. 예언과 방언의 비교(1-19)
2. 방언은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임(20-25)
3.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26-33)
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34-36)
5. 바울의 편지가 주의 명령임(37-40)
■ 본문 강해
1. 예언과 방언의 비교(1-19)
1) 방언보다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1-2)
2) 방언은 자기 덕을,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움(3-5)
3)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나 예언은 주의 뜻을 전함(6-9)
4) 다섯 마디 깨달은 말씀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나음(10-19)
[14:1] 1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 곧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라고 말한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지만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고전 12:7).
그러므로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주어진 어떤 은사도 교회를 위하여 활용될 수 없고, 그 은사가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성령의 은사 가운데 예언이 특별히 좋은 은사임을 강조한 말이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준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벧후 1:19-21; 계1:3).
사도 시대에는 표준계시(성경)가 아직 완성되기 전이므로 예언의 계시가 주어지는 시대였다(고전 13:9).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의 말씀은 교회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은사이다(딤후 3:16-17).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게 되고(행 2:37-38), 그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삼상 15:22), 성도 자신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며 복을 받게 된다(요 17:17; 신 28:1-6)
[14:2] 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 말씀은 통역하는 자가 없을 때 방언(γλῶσσα; 글로싸)을 말하면 알아듣는 자가 없고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방언은 본래 성령의 능력으로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구사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행 2:11).
그러므로 방언을 하면 그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아무 유익이 없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전 4:1; 막 4:11).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비밀 곧 복음을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방언이다.
[14:3] 3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1:3).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언을 말하면 사람들이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사람은 회개하고, 그 말씀을 믿는 사람은 안위를 받으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14:4] 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방언(γλῶσσα; 글로싸)을 말하는 자가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곡한 표현으로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한 것이다.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준계시(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교회에 유익한 말씀이며 교회의 덕을 세운다.
[14:5] 5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다 방언(γλῶσσα)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방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외국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성도가 방언을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교회에 유익이 없다(그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인이 없는 경우이다).
그러한 경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방언을 하는 자가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
[14:6] 6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바울이 말하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γλῶσσα; 글로싸)을 말하고 하나님의 계시(하나님께 새롭게 받은 말씀)나 지식(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지식)이나 예언(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이나 가르치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말한다.
이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성도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14:7-8] 7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저(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그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구별이 없다면 피리 소리인지 거문고 소리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나팔 소리의 신호로 전쟁을 예비하는데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못하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어떻게 전쟁을 예비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방언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므로 무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4:9] 9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그러므로 성도가 혀로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않으면 듣는 자가 그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허공에다말하는 것과 같다. [14:10-11] 10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되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된다.”라고 말한다.
말은 소리를 통하여 뜻(의미)을 전달하는 것이다.
[14:12-14] 12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신령한 것(성령의 은사)을 사모하는 자들이니, 교회의 덕이 풍성하도록 구하고, 방언(γλῶσσα; 글로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하고 있다.
바울은 “내가 만일 방언(γλῶσσα; 글로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이 마음에 없고 따라서 기도하였으나 아무 유익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떻게 의미 없는 소리로 지껄일 수 있겠는가? 그러한 기도야말로 중언부언하는 기도이다.
[14:15]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이 말하되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하였다.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마음으로 기도하는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반응) 여부를 의식하는 기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마음이 기도하는 내용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기도가 아니다.
또 영은 하나님과 교통이 없는데 마음으로만 하는 기도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대로 독백하는 기도이므로 올바른 기도가 아니다. 찬송도 마찬가지이다.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마음으로 찬송의 내용(가사)과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는 여부를 의식하는 찬송이 올바른 찬송이다.
[14:16-17]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영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가 아니라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기도하는 자의 감사에 “아멘”할 수 없다. 기도하는 자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므로 덕 세움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바울이 강조하고 있다. [14:18-19]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바울은 모든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실제로 세계 여러 곳에 다니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지방의 말로 복음을 전하였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통역이 없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 방언은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임(20-25)
1)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20)
2) 방언에 대한 불신자들의 반응(23)
3) 예언의 효과(24-25)
[14:20]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지혜(φρήν; 프렌)’는 ‘깨달음, 이해, 감정’을 의미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지혜가 어린아이와 같이 분별력이 없다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 있다.
“악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악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악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혜에 있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바르게 알고 행하여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방언을 한다고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이다.
방언을 말하면서 자랑하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 13:4).
사랑이 없으면 방언이나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소리 나는 구리와 꽹과리 같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전 13:1).
[14:21-22] 21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울이 이사야서 28:11-12절을 인용하여 방언이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임을 증언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장차 바벨론 군사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이 알아듣지 못하는 바벨론 방언으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멸망하게하여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이방인)들을 위하는 표적이다.
그러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바울이 증언하였다.
[14:23]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방언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14:24-25] 24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그러나 성도들이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그 예언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그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에 대한 책망을 듣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그 예언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죄를 회개하는 여부에 따라 그들이 구원받은 여부를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게 된다.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예언을 듣는 자들이 자기 마음의 숨은 죄와 부패한 성품이 드러나 회개하며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회에 유익을 주지만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므로,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바울이 거듭 증언하였다.
3. 예배의 질서(26-33)
1)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6)
2) 방언을 말하는 자가 지킬 일(27-28)
3) 예언하는 자가 지킬 일(29-32)
4) 하나님은 어지러움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심(33)
[14:26] 26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성도들이 모여 예배할 때에 찬송시도 있고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으나 모든 것이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
사도 시대에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므로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계시의 말씀을 주시고 방언도 주시고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도 주셨다.
그러나 그 모든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14:27-28] 27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순서대로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해야 한다.
방언은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역하면 교회에 유익을 주지만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듣는 자들에게 유익이 없으므로 교회에서는 잠잠해야 한다(19절 참조).
방언으로 말하는 자가 통역이 없거든 교회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하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므로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의미이다.
방언이 성령의 은사이며 통역도 성령의 은사이다.
성령께서 오늘날 방언의 은사를 주신다면 같은 성령께서 오늘날 통역하는 은사도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에 의미 없는(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자들은 많으나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았다는 자들을 필자는 만나보지 못하였다.
[14:29-30] 29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성령의 은사로 예언하는 자가 있으면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여야 한다.
분별하라는 것은 그 예언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예언인지 아닌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서 나는 예언도 있고(겔 13:17), 마귀가 주는 거짓 예언도 있기 때문이다(렘 5:31, 14:14).
그러므로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하여야 한다.
성령은 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무질서하게 예언하도록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14:31] 31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이나 계시나 방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수단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질서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은 소란스럽고 교회에 유익이 없다.
[14:32-33] 32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통제를 받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한다면 그 성령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예언이나 계시를 주실 때에 먼저 하던 사람에게는 그 예언이나 계시를 멈추게 하신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모여 회의할 때에도 어떤 사람이 사회자에게 발언권을 얻어 말하는 도중에 사회자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도록 하려면 먼저 말하던 사람의 말을 그치게 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동시에 두 사람 이상이 소란스럽게 예언하도록 하시지 않는다.
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34-36)
1) 교회에서 여자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음(34)
2)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합당함(34)
3) 배우려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볼 것임(35)
[14:34-35] 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여자에게 말하는 것(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율법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남편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였고(창 3:16), 여자들의 머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고전 11:3).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딤전 2:11-12)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자가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묻고 여자가 교회의 공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5. 바울의 편지가 주의 명령임(36-40)
1) 주의 명령인 줄 알라(36-38)
2)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39)
3)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40)
[14:36] 36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서 나왔느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하였느냐?”라고 책망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고린도 교회가 자기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처럼 자랑하고 교만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14:37-38] 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만일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한다면, 그는 사도 바울이 편지로 전하는 이 말씀(고린도전서)이 주님의 명령인 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이 말씀을 주님의 명령으로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진리(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요 신령한 자가 아니다.
[14:39-40] 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사도 시대에는 표준계시(성경)가 완성되기 전이며 예언과 방언이 주어지는 때이므로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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