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질그릇 안의 보배 고석남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제4장 질그릇 안의 보배 고석남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 본문 분해


1. 우리가 낙심하지 않음(1-6)

2.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음(7-15)

3. 성도의 겉 사람과 속사람(16-18)


■ 본문 강해


1. 우리가 낙심하지 않음(1-6)


[4:1] 1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복음을 반대하던 자였으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구원을 받아 의의 직분 곧 복음의 직분을 받았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자들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반대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면 믿고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4:2]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숨은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나 자신은 알고 있는 부끄러움이니 자기 양심에 가책되는 일들이다. 

바울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며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들도 자기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여야 한다.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속임(πανουργία,파눌기아)’은 ‘교활한 속임수’를 의미한다. 

거짓 선지자와 이단은 교활한 속임수를 써서 다른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진실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다(요 8:44).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혼잡하게 하다(δολόω,돌로오)”는, “다른 것을 섞다, 거짓되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말을 섞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말을 섞어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직 진리를 나타냄”

진리의 사전적 의미는 “참된 이치, 바른 도리,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영적인 진리이다. 


1) 삼위 하나님이 진리이다. 

하나님(시 31:5)과 예수 그리스도(요 14:6)와 성령(요 16:13)이 진리이다.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도리가 진리이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이다(갈 2:5).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을 받는 참되고 유일한 도리이다. 


3)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진리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도리이다. 

예수님께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진리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에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인정한다. 


[4:3-4] 3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도 그 복음을 끝까지 거부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이다. 

그가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세상 신(마귀)이 그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형상(εἰκών,에이콘)’은 “형상, 모습, 닮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는가?


1) 그리스도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다. 

그리스도께서도 죄가 없으시다(히 4: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2) 그리스도는 사랑이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 무한하시다(요일 4:8). 

그리스도께서도 사랑이 무한하셔서 죄인들을 대신한 속죄양으로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3) 그리스도는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창 17:1). 

그리스도께서도 전능하신 능력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4) 그리스도에게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생하신다. 

그리스도께서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4:5]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을 나타내거나 자랑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신 것과 또 예수님을 위하여 바울이 성도들의 종된 것을 전파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

‘주(κύριος,퀴리오스)’는 첫째, 소유주 곧 주인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십자가 구속으로 성도를 사서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셨으므로(고전 6:20),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도들의 주(주인)가 되셨다. 


둘째, 주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그 증거이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라고 말씀하셨다.


[4:6]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리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 9:2)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 

이 빛은 영적인 빛이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는 빛이다(행 9:3).


2.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음(7-15)


[4:7]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는 복음과 복음의 직분이다. ‘질그릇’은 바울과 성도들의 육체를 말한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육체는 질그릇과 같아서 연약하고 보잘 것이 없으나 그 육체 안에 보배(복음)를 가지고 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을 말한다.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에는 죄인을 구원하는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전 1:18).


[4:8] 8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하는 자들이 바울을 사방으로 욱여싸도(억눌러도) 싸이지 않고, 바울이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보배가 자기 안에 있고, 죄인을 구원하는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4:9-10]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항상 예수 죽인 것(십자가)을 몸에 짊어지고 믿음으로 나아간다. 

이는 예수의 생명도 바울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는 것이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생명’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하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죄인들의 속죄양으로 죽으셨으나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바울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죄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충성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바울의 몸에 나타나 바울도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4:11] 11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증거이며 또 죽을 육체가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4:12] 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우리)이 복음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일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영생)을 얻으면 고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


[4:13-14] 13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시편에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시 116:10)라고 말하였다. 

바울이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을 가졌으므로 믿는 마음으로 말하되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바울(우리)도 다시 살리셔서 너희(고린도 교회)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부활의 소망과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확신하면서 말하였다.


[4:15] 15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행한 모든 것이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모든 수고는 교회를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3. 성도의 겉 사람과 속사람(16-18)


[4:16] 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러므로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 

겉 사람(육신의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영의 새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성도의 겉 사람은 늙고 쇠약하게 되므로 성도의 육신은 불신자의 육신과 차이가 없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성도의 속사람은 신령한 사람 곧 영에 속한 사람이다. 

성도는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영에 속한 사람)의 이중성이 있다(고전 3:1).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고전 6: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고후 5:17). 

그러므로 속사람(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선한 일을 하며(엡 2:10), 항상 기뻐하며(빌 4: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요일 3:24), 새 사람이며(엡 4:24), 죄를 범하지 않는다(요일 3:6).

그러므로 속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새롭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한다.


[4:17] 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모든 성도가 이 세상에서 크고 작은 환난을 당한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시는 것은 성도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다(시 119:71). 

환난을 통하여 성도가 죄를 회개하게 되고(시 119:67), 겸손을 배우며(고후 12:7),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받아 더 좋은 소망이 있게 한다(롬 5:3-4).

그러므로 환난을 통하여 얻는 유익에 비하면 환난은 아무리 커도 가벼운 것이며 성도가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다. 

잠시 지나가는 가벼운(작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복을 받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이 올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4:18] 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물질세계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 곧 천국의 영원한 세계이다. 

육신의 사람은 잠시 후에 죽지만 영의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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