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석남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제6장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석남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 본문 분해


1.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1-10)

2. 마음을 넓히라(11-13)

3.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14-18)


■ 본문 강해


1.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이다(1-10)


[6:1]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무엇인가?


1)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 복음이 믿어지며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으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는 사람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다.


3)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마 22:37-39참조). 


사랑은 최고의 율법이며(약 2: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다. 


4) 성도의 인격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성령이 계시므로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한다. 

또 진리를 믿고 순종하면 그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당연하다(요 17:17). 

그러므로 성도의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다. 


[6:2] 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한다. 


은혜받을 만한 때가 언제인가?


1) 복음이 전파될 때이다. 

구약시대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으니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때이다. 


2) 복음의 일꾼을 만났을 때이다. 

진리를 바르게 증언하는 복음의 일꾼을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거짓 사도들이 나타나 다른 복음을 전하며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바른 일꾼을 만나 바른 진리를 배울 때가 은혜받을 만한 좋은 때이다.


3)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이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가 은혜받을 만한 때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힘써야 한다.


[6:3] 3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바울은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후 그 일을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행 20:24). 

그러므로 그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다른 사람을 거리끼게 한다면 복음을 전하여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물론이고 성도들도 다른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게 하고 호감을 줄 수 있도록 말과 행실이 친절하며 깨끗하고 거룩하여야 한다.


[6:4-5] 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며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고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6:6] 6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깨끗함과”

사도 바울은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물질적인 유익이나 명예나 영광을 위하여 일하지 않았다. 


“지식과”

바울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바른 지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오래 참음과”

바울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면서도 오래 참고 복음을 전하였다. 


“자비함과”

“자비함(χρηστότης,크레스토테스)”는,

“인자, 자비, 친절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항상 친절한 태도로 일하였다. 


“성령의 감화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의 능력으로 일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의 감화로 일하였다(살전 1:5참조).


“거짓이 없는 사랑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6:7] 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진리의 말씀과”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요 17:17)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였다.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의의 무기이다. 

성도는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다시 불의(죄)를 행할 수 없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이것이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는 것이다. 


[6:8] 8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바울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였으나 사람들에게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서는 바울이 영광을 받았으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욕을 받았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바울의 전도를 받는 사람들은 바울을 아름다운 이름(귀한 사도)으로 인정하였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바울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사람을 속이는 사람으로 보였으나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참된 사도로 인정하였다. 


[6:9] 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바울의 복음을 받는 사람들은 바울을 유명한 사도로 인정하였다.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고, 또 실제로 죽은 자 같이 보였다(행 14:19-22).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죽지 않고 살았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므로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셨기 때문이다.


[6:10] 10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바울이 근심하는 자 같이 보였으나 바울은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말하였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이 볼 때는 바울이 가난한 자 같이 보였으나 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다. 

복음을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부요하게 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이 보기에는 바울이 아무것도 없는 자 같이 보였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보다 더 부요하고 풍족한 자로 살면서 범사에 감사하였다(살전 5:18).


2. 마음을 넓히라(11-13)


[6:11] 11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바울이 넓은 마음으로 입을 열어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넓은 마음’이란 상대방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입이 열렸다’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아무 일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감없이 복음을 다 전하였다는 의미이다. [6:12] 12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의 마음이 좁아서 교인들을 용납하지 않고 책망만 한다고 불평하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이 좁아진 것이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의 마음이 좁아서 바울을 오해한 것이다. [6:13] 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바울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하니 고린도 사람들도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처럼 바울에게 마음을 넓히라고 말한다. 

마음을 넓히는 것은 너그럽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섭섭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은 좁은 마음이다. 

마음을 넓히려면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3.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14-18)


[6:14]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멍에를 함께 메지 하지 말라”


멍에를 같이 하는 것은 함께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자들의 불신앙적인 행동에 함께 협력하였기 때문에 신앙이 타락하여 바울을 오해하여 불평하며 비방하게 되었다. 

성도는 믿지 않는 자들의 불신앙적인 행동에 동조하거나 협력해서는 안 된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의(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쉬네)’는 ‘하나님 앞에서 옳고 바른 것’이며,

‘불법(ἀνομία 아노이마)’은 ‘옳지 않음, 불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와 불법은 본질상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성도는 의롭다 함을 얻었고, 불신자들은 마귀의 종노릇하며 불법을 행하므로 성도들이 그들의 행위에 함께 협력할 수 없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빛과 어두움은 정반대의 속성을 가졌으므로 공존할 수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어두움이 있으면 빛은 사라진다. 

성도는 빛의 자녀이며(엡 4:8; 살전 5:5), 불신자들은 어두움의 자식들이다(엡 4:8; 잠 4:19) 

그러므로 어두운 가운데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불신자들과 빛의 자녀인 성도들이 사귈 수 없다.


[6:15]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벨리알은 사단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절대로 조화될 수 없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믿지 않는 자는 마귀와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과 조화될 수 없다(엡 2:2참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상관하며(μερίς 메리스)’는 ‘몫을 나눈다.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믿는 자는 천국의 기업을 얻고 불신자들은 천국의 기업에서 제외된 자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몫을 나눌 수 없다. 


[6:16]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시 11:4). 그러므로 성전에 우상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우상을 섬기면 안 되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협력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도 안에 성령이 계시고(고전 3:16), 예수님과 하나님도 계시기 때문이다(고후 13:5; 요일 4: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다. 

성도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레 26:12)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셔서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 


[6:17-18]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사 52:11)고 말씀하셨다.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 된다. 

성도가 자기 몸을 깨끗한 성전으로 유지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영접하여 아버지가 되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와서 따로 있고 그들의 행동에 동참하거나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거룩한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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