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복음의 진리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제2장 복음의 진리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 본문 분해
1.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임(1-10)
2. 바울이 게바를 면책함(11-14)
3.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15-18)
4.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19-21)
■ 본문 강해
1.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임(1-10)
1)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감(1-5)
[2:1] 1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십사 년 후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다메섹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사도로서 부족함을 깨닫고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기도하며 복음의 계시를 받았다.
그리하여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15일을 머물고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갈 1:18-21).
그 후 14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때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바나바와 디도였으며,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목적은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계시 때문이었다(행15:1-2 참조).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누구든지 복음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내려와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행 15:1)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가 복음의 진리에 대한 큰 혼란이 일어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였고 이방인들이 실제로 구원받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다.
또 디도 역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지만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바나바와 디도는 이방인이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산 증인들이었다.
[2:2] 2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계시를 인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의 유명한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제출하되 사사로이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자기가 받은 계시에 대하여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을 달음질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달음질은 힘을 다하여 정확한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야 하며 달음질을 잘하면 면류관을 받는다(고전 9:24-25).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앞에 가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는 것이다(고전 9:25).
① 바울이 복음을 바르게 전하였다(갈 1:8;마 5:19).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았다(고후2: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19)”라고 하셨다.
③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였다(고전4:1-2).
바울이 말하되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다면 바울이 지금까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전한 진리가 무너지고 그의 수고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갔다.
바울이 말하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하였다.
[2:3] 3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에게 일부러 할례를 받지 않게 하였다.
만일 디도가 할례를 받았다면 할례주의자들이 그것을 빌미로 “바울도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라고 선전을 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언약의 표징이다(창 17:10-14).
‘언약의 표징’이란 언약을 받았다는 표징일 뿐 구원의 표징이 아니다.
할례를 받았어도 하나님의 언약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할례를 받은 자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한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분이시니라(롬 3:30)”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롬 4:11).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아도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
로마서 2:28-29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라고 하였다.
[2:4] 4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할례주의자 곧 유대교적 이단이다.
이단은 항상 드러나지 않게 가만히 들어온다.
이단이 겉으로는 잘 믿는 척, 겸손한 척하면서 점점 본색을 드러내 진리를 변질시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령한 자유를 얻었다.
① 죄에서 해방된 자유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엡 1:7).
그러므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또 성도는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롬 6:6).
그러므로 죄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②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
그러므로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 안식하며,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몸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③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자유이다.
성도는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진리)이 믿어지고 그 진리를 순종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처럼 소중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마귀와 그 종들은 성도의 자유를 빼앗고 다시 죄의 종, 사망의 종, 마귀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한다.
바울 당시에는 마귀가 할례주의자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자 맹렬히 역사하였다.
할례를 받으면 왜 종이 되는가?
할례는 율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사람이 연약하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마서 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기록되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처음에는 율법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겠지만 인간의 한계가 있어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범하여도 율법은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정죄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결국 죄의 종이 되고 사망의 종이 된다.
[2:5] 5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진리를 양보하는 일에는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았으니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성도가 절대로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 한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단 3장).
또 다니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도 달게 여겼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라고 하셨다.
2) 사도들이 바울에게 더하여 준 것이 없음(6)
[2:6] 6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유명하다는 이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직접 불러 세우신 사도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직접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셨고, 그들이 삼 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유명한 사도들이다.
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음의 계시를 직접 주셨기 때문에 그 유명한 사도들이 바울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 주거나 더하여 준 것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참조).
하나님은 사람의 가문이나 학벌이나 외모를 따라 판단하시지 않는다. 요즘 신자들이 이사하여 교회를 선택할 때 목사의 학벌이나 외모를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목사가 성경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며 충성하는지 그리고 목사의 신앙과 인격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선택하여야 한다.
3) 사도들이 바울의 사도 됨을 인정함(7-10)
[2:7-8] 7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바울을 만나본 후,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또한 바울에게 역사하사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인정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였다(행 9:22-29 참조).
[2:9] 9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내게 주신 은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타나 바울을 불러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그에게 주신 복음의 계시를 주셨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임을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깨달았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처럼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교제의 악수란 사랑으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 문제로 일시 소란했던 일들이 은혜롭게 잘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과 같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주의 일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2:10]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바울에게 복음에 대하여는 더하여 준 것이 없었으나 다만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협력하도록 부탁을 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는 바울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고 있었다(행 11:27-30).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며 어려운 성도를 돕는 것이 교회의 아름다운 덕이다.
2. 바울이 게바를 면책함(11-14)
1) 게바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외식함(11-13)
[2:11-13]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게바가 안디옥에 온 일이 있었으며 그에게 책망할 일이 있어 바울이 책망하였다.
바울이게바(베드로)를 책망한 일을 말하는 것은 바울에게 베드로와 동등한 사도의 권위가 있음을 증언하려는 것이다.
면책은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것이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였으며(갈1:19),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처럼 여기는 중요한 인물이었다(갈 2:9).
야고보가 어떤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몇 사람을 안디옥 교회에 보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는 이방인도 복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된다는 진리를 게바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망할 일이 있기로”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자 게바가 그들을 두려워하여 외식하며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므로 다른 유대인도 게바를 따라 외식하였고 심지어 바나바도 그 외식에 유혹되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이 많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아직 율법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거나 교제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행 10:28).
그러므로 게바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알려지면 할례자들에게 비난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가 외식하고 만 것이다.
성도가 인간적인 체면을 생각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진실한 마음을 버리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행동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신앙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행동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2) 바울이 게바를 책망함(14)
[2:14] 14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게바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외식하므로 바울이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를 책망하되 “당신이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처럼 살고 유대인의 율법대로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 답게 살게 하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동한 것이다.
그런데 게바가 외식함으로 이방인이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과 교제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억지로 할례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게바를 책망하였고, 게바는 바울의 책망을 달게 받았다.
게바를 책망한 바울도 훌륭하지만, 후배 사도의 책망을 잘 받은 게바도 훌륭하였다.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요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책망을 받지 않거나 책망을 들을 때 반발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며 발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아무도 책망하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3.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15-18)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15-16)
[2:15-16] 15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바울은 본래 유대인이며 율법을 잘 알고 지켜온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다.
사람이 절대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본래 그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도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되었으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15:6)”라고 하였고, 하박국 2:4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였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율법을 지킨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성품이 있고 육신이 연약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선하고 거룩한 줄 알면서도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롬 7:7).
또 사람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지키지 못하여도 율법은 그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① 죄를 깨닫게 한다.
율법이 없으면 사람이 죄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율법이 있으면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롬 3:20; 4:15).
사람이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도록 율법이 인도한다.
②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롭고 선한 말씀이다(롬7:12).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③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한다.
율법에는 영적인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율법의 의식과 제도를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깨닫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속죄 제사하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속죄양)이 되실 것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죄인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게 하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히 4:15).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므로 죄인들을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실 수 있다.
②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고후 5:14-15).
속죄양은 반드시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나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셨다(고후 5:15).
③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9:5).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시다(요 1:1).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 속죄양으로 죽어 많은 죄인들의 죄를 단번에 대속하실 수 있다(히 9: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이 있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나오고,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하는 정신으로 살게 된다.
2)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지 않음(17-18)
[2:17-18] 17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믿고 할례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서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죄를 짓게 하는 분이 아니시다.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줄 믿고,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할례를 폐지하였다.
그런데 바울이 만일 이방인들에게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이며, 그가 과거에 할례를 폐지한 것은 죄를 범한 것이 된다.
4.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19-21)
1)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19-20)
2)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심(20)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삶(20)
[2:19-20]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바울은 자신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선언한다.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율법이 정하였다(창 2:17).
바울이 언제 어떻게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말인가?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바울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진리를 바울이 깨달았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옛사람(죄인)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의 정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과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성도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것을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셨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의롭다 함을 얻었다.
이 진리는 성도의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대단히 필요하고 귀한 진리이다.
성도가 이 진리를 믿을 때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함을 얻은 확신과 죄의 유혹을 벗어나 죄를 범하지 않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죄인이 죽으면 그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바울이 복음을 믿어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고, 죄를 범한 죄인(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는 것이다(롬 14:7-8).
그러므로 성도가 이 진리를 깨달아 믿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롬 14:7-8).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바울은 오직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한다. 성도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영으로 살아계신다(고후 13:5참조).
성도가 이 진리를 깨달아야 거룩한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처럼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가?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버려 죄를 대속하여 주신 것을 믿고 주님께 감사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과 깨끗한 행동을 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계신 것을 믿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거룩한 사람으로 점점 변화되어야 한다.
[2:21] 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만일 율법을 지킨 행위로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며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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