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믿음으로 주시는 복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제3장 믿음으로 주시는 복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 본문 분해


1. 믿음으로 받는 복(1-14)

2. 율법과 믿음(15-29)


■ 본문 강해


1. 믿음으로 받는 복(1-14)


1)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1-5)


[3:1]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인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받았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그러므로 진리의 세계를 밝히 보는 것처럼 믿어진다. 예컨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보지 못하였으나 창세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마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본 것처럼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라고 하였다. 

진리를 눈으로 본 것처럼 믿어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진리를 아무리 부정하여도 진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3:2]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성도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이 믿어진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이다. 

고린도전서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구속과 부활이 믿어지는 것은 성도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 진리를 믿도록 감동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① 예수님을 저주할 수 없다(고전 12:3).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양심상 예수님을 저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전 12:3).”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저주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성령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② 예수님을 주 곧 그리스도로 믿는다(고전12:3).

예수님을 구세주(그리스도)로 믿어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저주할 수 없다.


③ 진리를 깨달아 믿는다(요 16:13; 14:26).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경을 읽든지 들을 때에 그 말씀이 믿어진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도가 배우지 않아도 모든 진리를 단번에 깨닫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④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 4:8),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이다(갈 5:22).


[3:3]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한 것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의 진리를 믿었다. 

그런데 그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 줄로 안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고 육체로 돌아간 것이므로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3:4]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도 잘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할례 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줄 알고 하나님의 참된 복음을 버렸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과거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받은 많은 괴로움이 과연 헛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3:5] 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셨고, 성령은 성도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이 일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결코 율법을 지킨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복음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


2)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6-9)


[3:6]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라고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네 몸에서 날 자”는 역사적으로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태어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을 언약하신 말씀이다.


[3:7]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이방인도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아브라함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요 8:56). 

그러므로 이방인도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자는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3:8-9]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방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땅의 모든 족속 곧 이방인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구원의 복을 받는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복은 세상에 속한 육신의 복이 있고(신28:2-6),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신령한) 복이 있다(엡 1:3). 

육신의 복은 세상에서 재물이 많거나 높은 지위와 권세를 얻거나 장수하여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영적인 복은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진리를 순종하여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영적인 복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육신의 복을 얻기 위해서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지만, 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육신의 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고, 영적인 복은 이 세상과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는 복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육신의 복보다 영적인 복을 받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 

영적인 복은 복음을 믿고 진리를 순종함으로 받는다.


3)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10-14)


[3:10]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히 다 지켜야 한다. 

신명기 27:26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였고, 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 2:10-11)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연약하여 일생동안 모든 율법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다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3:11]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하박국 2:4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였음이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의로운 사람은 의를 행하려는 선한 의지로 살아간다.

둘째,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살아간다. 

바울이 두 번째 해석을 취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를 말하였다.


[3:12]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로마서 7:12에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하는 자는 살고 그것을 범하는 자는 죽는다.

레위기 18:5에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하셨다. 

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라고 하셨다.


[3:13]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셨다.


‘속량(ἐξαγοράζω,엑사고라조)’의 의미는

‘되찾다, 다시 찾다, 회복하다, 구속하다’의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죗값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3:21참조)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함을 얻었다.


[3:14]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임을 당하셔서 우리를 속량하신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①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도 미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얻는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8)


②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다(욜 2:28).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9)


2. 율법과 믿음(15-29)


1)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폐하지 못함(15-18)


[3:15] 15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바울이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한번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지 못하는 것이 만국 공통의 상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대로 이루신다.


[3:16]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6절)과 성령을 받는 것(14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을 말한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인가?


①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라고 하셨다. 

‘네 자손들’이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였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창 22:18). 

그러므로 이 약속은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을 의미한다.


②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대대 후손은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후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방인이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라고 하였다.


③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라고 하셨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3:17]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처음 언약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나이 칠십오 세였다(창 12:4). 

그리고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백삼십 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헛되게 하지 못한다.


[3:18] 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유업”은 ‘상속권, 또는 상속재산’을 의미한다. 

상속은 자녀가 부모의 재산을 넘겨받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천국을 값없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약속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셨다(창 17:8).


2)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함(19-22)


[3:19]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더하여진 것이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들에게 더하여 주셨다. 

율법이 없으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죄를 범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뜻이다

(롬 7:12). 사람이 율법을 지켜 거룩하고 선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다.


②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야 마땅하지만, 사람이 연약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그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③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고, 죄인은 반드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죄인이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소나 양으로 속죄 제사를 드려 죄 사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레 4:28-31).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주셨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구속을 이루어 주셨다.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을 따라 소나 양으로 하는 속죄 제사는 의식적인 제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종결된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제사와 의식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끝났다.


[3:20] 20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 중보자, 곧 모세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다. 

‘중보자(μεσίτης,메시테스)’는 ‘중재자, 화해시키는 자’를 의미한다. 

중보자 모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율법을 통하여 화해시키며 조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무능하고 연약하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모세의 중보자 역할은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주권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언약하셨고,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3:21]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이 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결코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언약을 폐하지 못한다고 바울이 증언하였다(17절).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의 약속이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율법은 율법대로 필요하고 복음의 약속은 약속대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복음)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이처럼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은 그 목적이 서로 다르다. 

만일 하나님께서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되기 때문에 율법과 약속은 모순되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3:22]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이미 선언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라고 하였다.

또 로마서 3:10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롬 5:1; 갈 2:16), 영생을 얻으며(요3:16),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다(요 14:1-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이루어 주시려고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다.


“죄 아래 가두었다 함”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복음을 믿지 않으면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하셨다는 뜻이다.


[3:23] 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오기 전(구약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율법 아래 매인 바되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신 다음부터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다.


[3:24] 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교사(παιδαγωγός,파이다고고스)’는,

‘소년의 보호자, 가정교사, 안내자’라는 뜻이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안내자와 같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음(25-29)


[3:25] 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의 안내자 역할이 끝났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며 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도 율법은 여전히 성도의 신앙생활에 유익한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선한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도가 복을 받는 일이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고 하셨다. 

다만 의식적인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한 바 되었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율법 곧 정결 예식에 관한 율법과 소나 양으로 드리는 제사에 관한 율법은 문자대로 지키지 않는다.


[3:26-27]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

세례는 예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것이며 기독교의 중요한 성례이다. 

세례는 그 의식(儀式)보다 의식에 담겨있는 진리가 중요하다. 


세례의 참뜻이 무엇인가?


① 죄 씻은 표징이다.

사도행전 22:16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례의 의식을 통하여 죄를 씻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씻었다는 표징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 믿어지고 의롭다 함을 얻은 확신이 있는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이다.


② 옛 사람이 죽었다는 표징이다.

로마서 6:3,6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세례는 성도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믿고 죄의 종노릇을 하지 말아야 한다. 

죽은 자는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3:28]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고, 남녀의 차별도 없으며 모두가 하나이다. 

모든 성도는 한 분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성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엡 1:10; 빌 1:27).


[3:29] 29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방인 성도들이 복음을 믿어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천국)을 받을 자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성도는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어떤 고난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신앙을 양보하지 말고,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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