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아들에게 유업을 주심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제4장 아들에게 유업을 주심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 본문 분해


1. 성도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다(1-11)

2. 바울을 본받으라(12-20)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비유(21-31)


■ 본문 강해


1. 성도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다(1-11)


1) 어렸을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다(1-3)


[4:1-2]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유업을 이을 자(κληρονόμος, 클레로노모스)”는 ‘상속자, 후계자’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가 그 유업의 주인이다. 그러나 유업을 이을 아들이라도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후견인(ἐπίτροπος, 에피트로포스)’은 ‘법적인 대리자’를 의미한다. 

‘청지기(οἰκονόμος, 오이코노모스)’는 재산을 관리하는 자를 의미한다.


[4:3]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어렸을 때에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을 하였다. 


어렸을 때가 언제인가?


① 복음을 믿기 전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자라도 복음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초등학문에 얽매여 살았다.


②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도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율법에 얽매어 종노릇 하였다.


초등학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① 세상의 모든 학문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인간 생활에 어느 정도 유익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학문은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초등학문이다.


② 율법을 말한다.

율법이 하나님의 의롭고 선한 말씀이다(롬7:12). 그러나 율법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므로 율법도 초등학문에 속한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의 명분을 얻었다(4-7)


[4:4-5]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죄인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아담 때부터 하셨으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까지 약 4,000년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정확히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게 하신 것은 장차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요셉이 17세에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서 30세가 되었을 때 종에서 해방되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위함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 타락한 다음에는 모든 인류가 아담의 원죄가 있는 죄인으로 태어난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분으로 태어나시려면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셔야 한다. 

또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창세기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고, 이사야 7:14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예언하였다.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니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켜 죄를 범하지 않아야 죄인을 위한 속죄양이 되실 수 있다. 

예수님이 만일 율법을 하나라도 어겨 죄를 범하면 죄인들을 위한 속죄양이 될 수 없다.


‘속량(ἐξαγοράζω, 엑사고라조)’은 “다시 사다, 건져내다, 자유하게 한다.”의 의미이며, 종의 몸값을 대신 갚아 주고 그 종을 사서 자유하게 한다는 뜻이다. 

성도들이 본래 죄와 사망의 종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속죄양으로 죽으셔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아 주셨고, 죄인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속량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은 양자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시다(요 5:18 참조).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양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될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인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으며 장차 천국의 유업을 받게 된다.


[4:6-7]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그 아들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말한다(롬 8:9).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의 영을 성도의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

그러므로 성도 안에는 성령이 계신다(고전3:16; 6:19). 이것을 성령의 내주(內住)라고 말한다. 

성도 안에 성령이 계신 증거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빠(Ἀββᾶ, 압바)’는 아람어인데 아버지라는 뜻이다.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좋아하며 ‘아빠’라고 부르는 것처럼 성령을 받은 성도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불신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누구든지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 복음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유업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3) 다시 종노릇하지 말라(8-11)


[4:8] 8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 곧 우상에게 종노릇 하며 살았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그 우상이 사람에게 복을 주거나 재앙을 내리는 줄로 알고 그 우상을 두려워하며 종노릇한다.

시편 115:4-8에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라고 하였다.


[4:9] 9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신다. 

이사야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그의 종이 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은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다.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으로 돌아가 다시 율법에게 종노릇 하려고 하는 것을 바울이 책망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이방인도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자유자이다. 

그러므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율법의 종’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줄로 아는 사람이다.


[4:10-11] 10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초등학문 곧 율법으로 돌아가 날(안식일)과 달(월삭)과 절기(유월절,맥추절, 초막절 등)와 해(안식년, 희년)를 지켰다.

그들이 이렇게 율법을 열심히 지킨 것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라는 잘못된 교훈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면 바울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수고한 것이 헛되고,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버렸으므로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


2. 바울을 본받으라(12-20)


1) 처음에는 교인들이 바울을 존경하였다(12-16).


[4:12] 12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은 누구나 복음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바울이 깨달아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라디아 교인들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율법의 종노릇을 하지 않기를 바울이 간절히 원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을 때 바울과 그들 사이에는 민족을 초월하여 매우 좋은 감정으로 교제하였으며 그들이 바울을 조금도 해롭게 하지 않았다.


[4:13-14] 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바울이 몸이 약하여 휴양 차 갈라디아 지방에 갔다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갈라디아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므로 바울의 육체가 연약한 것을 갈라디아 교인들이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이 연약한 몸으로도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한 그 열정과 충성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바울의 육체에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눈병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바울에게 심한 눈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바울이 교회에 편지를 쓸 때 다른 사람에게 대필시키고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친필로문안함으로 그 편지가 바울의 편지임을 증명하였다(살후 3:17; 갈 6:11). 

바울의 육체에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었으나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업신여기거나 버리지 않고 오히려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교역자를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그 교역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다. 

성도가 교역자를 멸시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한다. 


성도가 교역자를 존경하며 사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① 교역자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며 은혜를 주신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는 모세를 세우시고, 모세가죽은 다음에는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여호수아 다음에는 사사들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다.


② 영적 어두움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성도가 교역자를 사랑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어두움에 빠져 신령한 세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요한일서 2:9-11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라고 하였다.


③ 하나님 안에서 살기 위함이다.

성도가 사람을 사랑해야 하나님 안에 있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인도하며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교역자를 사랑하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허물이 있어도 그 허물을 덮어주며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라고 하였다. 허물이 있기 때문에 그 교역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른 교역자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허물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허물이 있어도 그 허물을 덮어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수 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사랑하도록 믿음이 자라나고 인격이 변화되어야 한다.


④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눅 6:27).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가 은혜와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을 사랑해야 한다.


[4:15] 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존경하며 영접할 때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할례주의 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바울 사도를 의심하며 반대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주려고 할 만큼 바울을 뜨겁게 사랑하며 존경하였다. 

그때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때였다.


[4:16] 16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 주의자들에게 잘못된 교훈을 받아 미혹되었으므로 참된 진리를 가르쳐 준 바울을 반대하며 원수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성도들이 잘못된 교훈을 받으면 신앙이 무너지고 참된 종과 진리를 배척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종을 만나 바른 진리를 배우는 것이 성도에게 제일 큰 복이다.

이단에 빠지고 사이비 종교를 따라가는 자들은 잘못된 종을 만나 잘못된 교리를 배워서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성도가 참된 종과 바르지 못한 종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른 종을 만나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나 욕심을 품고 교만하면 마귀의 미혹을 받아 잘못된 종을 따라가기 쉽다.


2) 거짓 스승이 너희를 이간 붙였다(17-18)


[4:17] 17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할례 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열심히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고 가르치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바르게 양육하려는 뜻이 아니고, 교인들을 바울과 이간 붙여 교인들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4:18]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다른 사람이 좋은 목적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사모한다면 바울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바울도 좋은 목적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좋은 목적이라면 갈라디아 교인들을 사모하여 바른 진리로 잘 양육하는 것을 바울이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할례주의 자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을 사모하는 것은 자신들이 그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므로 옳지 않다.


3) 바울이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19-20)


[4:19]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나의 자녀들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을 복음으로 낳았고, 그들은 바울의 신령한 자녀들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으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얻어 그리스도와 연합(접붙임)되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에 나쁜 가지를 접붙이면 나쁜 가지도 좋은 가지가 된다. 

성도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도는 예수님 안에 있으니(요6:56), 성도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닮아갈 수 있고, 닮아가야 한다(마 11:29; 요13:34).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며,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여 점점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라고 하셨다.


“해산하는 수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바울이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한다. 

해산하는 수고는 여자가 당하는 수고 가운데 가장 큰 수고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에는 여자가 해산하다가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해산하는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가 태어나는 큰 기쁨이 있다.

요한복음 16:21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하였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스승에 미혹되었으나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노력하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다고 바울이 확신하면서 그 일을 위하여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한다.


[4:20]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바울이 언성(어조)을 바꾸어 온유하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지금까지 편지를 통하여 강한 어조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과 대면하여 온유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주의 자들의 미혹을 받았으나 바른 믿음에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라고 바울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바른 믿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바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타이르며 권면하려고 한다.


3. 아브라함의 두 아들 비유(21-31)


1) 육체를 따라 난 아들과 약속을 따라 난 아들(21-24)


[4:21-23] 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 사도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비유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을 주신 것은 단지 인간적인 실수로 이루어진 한 가정의 사건만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신령한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섭리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5:4-6).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십여 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의 아내 사라가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고, 하갈이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었다(창16:1-16). 그 후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잉태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라가 잉태하여 이삭을 낳았다(창21:1-5).

그러므로 계집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낳은 아들이며 자유로운 여자 사라에게서 낳은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로 비유하였다.


[4:24]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아브라함의 아내 하갈과 사라를 두 언약곧 율법과 복음으로 비유하였다. 하갈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다.


2) 율법은 종노릇하게 하고, 복음은 자유를 얻게 함(25-28)


[4:25]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과 같으니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다. 시내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곳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바울 당시 예루살렘은 할례주의자(율법주의자)들의 근거지였다.

솔로몬 시대로부터 바울 당시까지 예루살렘에만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 줄로 알고, 복음을 반대하고 할례를 고집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시내 산과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을 상징하였다.


“그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종노릇 한 것처럼 율법주의자들은 복음을 믿지 않으므로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한다는 의미이다.


[4:26]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바울이 이삭을 낳은 사라를 복음으로 비유하였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천국으로 비유하였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복음의 약속을 따라 낳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천국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율법의 종이 아니요 이삭과 같은 자유로운 아들이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4:27]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이사야 54:1에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장차 바벨론 포로가 되어 미약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잉태치 못하여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여자와 같고, 구로치 못한 여자와 같고, 홀로 사는 여자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 번성하게 될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여 홀로 사는 자의 자녀를 두 가지로 비유하였다.


① 사라의 자녀를 비유하였다.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던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잉태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을 비유하였다.


② 복음을 믿는 믿음의 자녀를 비유하였다.

바울이 이미 24절에서 사라를 복음으로 비유하였다. 

복음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갈 3:29).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들이 크게 번성할 것을 비유하였다.


[4:28]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을 향하여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과 그들이 복음을 믿어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이 약속의 자녀이며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자이다.


3) 계집종과 그 아들은 쫓겨남(29-31)


[4:29]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하였다(창 21:9). 

그와 같이 바울 당시에도 육체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율법주의자들이 성령을 따라 복음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이러한 일은 어느 시대나 일어나고 있다.

육체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성령을 따라 복음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율법주의라고 비난하거나 독선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4:30]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성경이 기록하기를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 이삭으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창 21:10).

이 사건도 문자대로만 본다면 첩의 아들이기 때문에 쫓아내는 것이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수 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로 본다면 육체를 따라 믿는 율법주의자들은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과 함께 천국의 유업을 얻지 못한다는 영적 진리를 교훈한다.


[4:31]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로운 여자 곧 복음의 자녀이다. 

복음을 믿는 성도는 율법에 얽매인 종이 아니요, 복음 안에서 자유로운 자이다.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복음을 믿는 성도들을 말한다.


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복음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으므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다.


② 죄의 유혹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죄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요15:5). 

또 성도가 옛사람이 죽은 것을 믿으면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롬 6:6-7).


③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성도는 영생을 얻었으므로 몸이 죽어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할 소망이 있으므로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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