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성령을 따라 행하라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제6장 성령을 따라 행하라 고석남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 본문 분해
1. 다른 사람의 범죄한 일이 드러났을 때(1-5)
2. 가르침을 받는 자의 태도(6-10)
3. 바울의 권면과 축도(11-18)
■ 본문 강해
1. 다른 사람의 범죄한 일이 드러났을 때(1-5)
1)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을 것(1)
[6:1] 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교회 안에는 각계각층의 사람이 있으며 믿음이 어린 사람도 많이 있어 범죄 한 사람이 드러날 수 있다.
성도가 범죄 하게 되는 것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기 때문이다.
신령한 성도는 범죄 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신령한 너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요일 2:2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므로 범죄 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범죄 한 사람을 분노한 감정으로 책망하면 효과가 없고 도리어 손해가 난다.
분노한 감정이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며(약 1:20),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이다(고전 13:4).
다른 사람이 범죄한 것을 보고 모른척하여도 옳지 않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5-17)라고 하였다.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교회 안에 범죄 한 사람이 드러났을 때 다른 성도들이 같은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여야 한다.
당장은 같은 범죄를 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같은 시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한문에 전차복후차계(前車覆後車戒)라는 말이 있다. 앞차가 전복되는 것을 보고 뒤에 있는 차가 조심한다는 뜻이다.
2) 짐을 서로 질 것(2)
[6:2] 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책임을 서로 나누어서 지라는 뜻이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범죄는 죄를 범한 그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지도자는 자기가 잘 지도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성도들은 그 사람을 잘 돌보아 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피차간에 서로 책임을 지며 회개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이다. 요한일서 4:21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고 하였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면 모든 율법이 자연스럽게 지켜진다.
3)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지 말 것(3-5)
[6:3]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다른 사람의 범죄 한 것이 드러났을 때 자기가 그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자기가 다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부패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마귀에게 속으면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조심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6:4-5]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다른 사람이 범죄 하였을 때 성도들이 각각 자기 일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가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러한 죄에 빠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조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범죄 한 일이 드러났을 때에 각각 자기가 할 일을 찾아 자기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2. 가르침을 받는 자의 태도(6-10)
1)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
[6:6] 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며 잘 대접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도록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먼저 성경 말씀을 바르게 잘 가르치고, 성도들은 성경을 잘 배워서 순종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도가 목사나 전도사를 마음으로 존경할 뿐 아니라 물질로도 잘 대접하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여라.”(살전 5:12-13)라고 하셨다.
그러나 교역자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정신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대접을 잘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하여야 한다.
2)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7-8)
[6:7]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성도가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서 은혜와 복을 받을 줄로 아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으니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에 내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라고 하셨다.
[6:8]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도가 육체를 위하여 욕심을 따라 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고 세상에서 높은 권세를 얻었어도 그것은 세상과 함께 지나가고 썩어진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한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말한다.
이러한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둔다.
“영생을 거둔다”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거룩한 생활을 한 그 열매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3)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라(9-10)
[6:9]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성도들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게 되면 낙심하기 쉽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신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도가 선을 행한다고 하나님께서 금방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조급한 마음을 품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잘 참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6:10] 10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 성도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여야 한다.
기회는 지나가고 말기 때문에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선한 일을 하여야 한다.
먼저 믿음의 가정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선을 행하여야 한다.
성도가 선을 행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여야 한다.
3. 바울의 권면과 축도(11-18)
1) 할례주의자들이 육체로 자랑하려 함(11-13)
[6:11] 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에게 눈병이 있어서 편지를 쓸 때 큰 글자로 썼다.
편지로서는 좋은 모양이 아니지만, 바울이 외모에 개의치 않고 형편대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12] 12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함뿐이라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
할례 주의자들이 육체의 할례를 자랑하였다. 그들은 외모를 자랑하려고 할례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는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거나 외모를 자랑하는 종교가 아니다.
성도는 심령이 깨끗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성도가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생의 새 생명을 받았고, 성도 안에 그리스도와 성령이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새 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여야 한다.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는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으려고 할례를 받았다.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라는 진리를 거부하고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 신자들을 심히 핍박하였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지 않으려고 기독교인 가운데 할례를 받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사함을 얻어 의롭게 되는 진리를 양보하는 결과가 되었다.
[6:13] 13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할례를 받은 율법주의자들도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할례받은 육체로 자랑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의 세력(숫자)을 늘려 할례라는 의식을 자랑하려는 것이었다.
종교가 타락하면 인간의 내면(속 사람)보다 보이는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2)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함(14-16).
[6:14]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할례 주의자들은 육체의 의식을 자랑하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셨고, 성도들은 그 십자가 구속을 믿어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엡 1:7).
그뿐 아니라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옛사람이 죽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말씀을 믿으면 죄의 유혹까지도 넉넉히 이기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어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참된 성도이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바울이 말하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하였다.
이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세상은 바울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바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바울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도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바울을 아무 쓸모없는 자로 여긴다는 뜻이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므로 바울과 세상은 피차간에 상관이 없고, 서로 영향을 받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6:15]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고, 거룩한 생활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성도의 새사람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선한 일을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다.
성도의 육신을 보면 믿기 전이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
성도들도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으나 다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셨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다(엡 4:24).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라고 하였다.
[6:16] 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규례를 행하는자”
‘규례(κανών,카논)’는 “규칙, 표준, 척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규례’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가 구원의 표준이 되며,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영의 새 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새 사람으로 행하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를 말한다.
이방인도 복음을 믿는 자는 그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갈3:29 참조).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평강(εἰρήνη, 에이레네)’은 “평화, 번영,복지)”를 의미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죄사함을 받았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다.
또 하나님의 자녀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 안에서 심령에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긍휼(ἔλεος,엘레오스)’은“불쌍히 여김, 자비, 동정”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울이 기원한다.
성도들이 마귀에게 속아 죄를 범한 경우에 하나님께 나아와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죄를 용서하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요일 1:9).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신다.
3) 바울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음(17)
[6:17] 17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다 증언하였으므로 할례 문제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또 바울의 몸에는 할례보다 더 중요한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가 고난을 받은 흔적이다.
예수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상처받은 자국이 있듯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돌에 맞은 흔적과 핍박받은 흔적이 그의 몸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증거이며(살후 1:4-5),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가 된 표이다(고후 12:23-27참조).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예수님의 사도가 아니라고 의심하거나 괴롭게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4) 축도(18)
[6:18] 18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형제들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을 향하여 “형제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바울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한 음성으로 부르는 것이다.
또 그들이 혈통적으로는 이방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속히 떠나(갈 1:6),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었으나 바울은 그들을 끝까지 형제로 사랑하며 그들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양으로죽어 죄인들을 대속해 주시고 영생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구원의 은혜를 말한다.
“심령에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심령(영, 영혼)에 있는 것이지 육체나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심령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다면 육체의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의 심령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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