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윤리 (딤전 5:1-10) 고석남 목사 디모데전서 강해설교
기독교의 윤리 (딤전 5:1-10) 고석남 목사 디모데전서 강해설교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어느 계명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며,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우리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 목사에게 교회에서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꾸짖을 자는 꾸짖어야 합니다(1-2).
우리가 가정에서 잘못한 자녀들을 사랑으로 꾸짖어야그 자녀가 좋은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꾸짖되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짖어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고쳐서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고 잘못하여도 모른 척하거나 잘못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노인을 꾸짖을 때 아비에게 하듯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또 젊은이는 형제에게 하듯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한 말로 꾸짖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여인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일체 깨끗한 마음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여야 합니다.
2. 참 과부를 존경해야 합니다(3-10).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참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존대하라(τιμάω 티마오)’의 의미는 ‘존경하다’, ‘공경하다’의 뜻입니다.
교회에서 참 과부를 명부에 올려서 꾸준히 공경하며 경제적으로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랑이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17-18에는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이 참 과부의 조건도 말하였습니다.
1) 외로운 자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입니다(5절).
자녀가 없어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과부로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이어야 합니다.
2) 주야로 항상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하는 자입니다(5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던 안나와 같은 과부를 말합니다(눅 2:36-37).
3) 향락을 좋아하지 않는 자입니다(6절).
‘향락을 좋아하다’(σπαταλάω 스파탈라오)의 의미는 ‘육욕에 빠지다’, ‘쾌락을 즐기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쾌락을 즐기는 자는 살았으나 신앙적으로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4) 나이가 60세 이상인 자입니다(9절).
젊은 과부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하여 처음 믿음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5)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자입니다(10절).
선한 행실은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자녀를 잘 양육했든지, 또는 나그네를 후대했든지, 또는 성도들의 발을 씻겼든지, 또는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했든지, 또는 모든 선한 일을 따라 행한 자이어야 합니다.
3. 자녀나 손자는 집에서 효를 행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합당한 일입니다.
자녀들이 자기 부모를 아무리 정성껏 공경하더라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행한 사랑과 헌신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8)고 말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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