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하나님의 구원 고석남 목사 골로새서 강해
제2장 하나님의 구원 고석남 목사 골로새서 강해
■ 본문 분해
1.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음(1-5)
2. 주 받은 자(6-7)
3. 십자가로 승리(8-23)
■ 본문 강해
1.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함(1-5)
[2:1-2]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인들과 라오디게아에있는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알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도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사도바울이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골로새 교회가 알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의 수고를 자랑하거나 인정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 위안받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인데 지금 로마 옥중에 갇혀 있으니 교인들이 많은 걱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옥중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잘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의미로 이 말을 하였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한다.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인이며 죗값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이었으나 속죄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죗값을 대신 갚아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라면 저절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함께 구원받은 다른 성도를 한 형제로 사랑하게 된다(요일 5:1).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한 형제이니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당연하다.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연합하고, 교회와 교회가 연합하여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으나 영으로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과 연합되어 모든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골로새 교회가 알고 위로를 받도록 권면하고 있다.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바른 깨달음으로 충만한 확신에 이른다.’는 뜻이다.
성도가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확신에 차서 믿는 일을 잘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심지어 이단에 끌려가기도 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게 되고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말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목사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주더라도 듣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들어야 그 말씀이 믿어진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들을 때는 아는 것 같으나 곧 잊어버리고 들은 말씀이 자신의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옥중에서도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아무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1)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의 자손이며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죗값으로 저주받은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최대 비극이며, 이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양으로 죽으셔서 우리 죗값을 대신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는 자는 단번에 죄를 용서받고 지옥의 형벌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다.
(2)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요 3:16).
우리가 영생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이 살아나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된다(엡 2:5).
불신자들은 그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으며 섬길 수 없다.
(3)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 안에 있는 영생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요 1:12).
세상에서 장관이나 대통령의 자녀만 되어도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얼마나 큰 영광인가!
(4)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천국을 기업으로 받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이 세상에서 잠시 나그네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며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비밀이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비밀을 깨닫게 하려고 옥중에서도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까지 이 성경을 기록하여 보낸다.
[2:3]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얻으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얻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성령을 받는다.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를 진리(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성도는 진리를 깨달아 믿는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와 만물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성도는 성경을 통하여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도리와 사람의 본분과 복을 받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더 좋은 지식을 얻고 더 지혜로운 자가 되며 이 세상과 내세에 영원히 복을 받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2:4]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거짓 선지자들이 골로새교회 안에 들어와 여러 가지 잘못된 교훈과 공교(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속여 신앙에 손해를 주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인들로 하여금 바른 진리를 깨달아 속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 성도가 진리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웃기는 말을 잘하거나 복 받는다는 말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도가 복을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5]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는 로마 감옥에 있으므로 골로새 교인들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그들과 항상 함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몸은 골로새 교인들과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규모’는 본래 군대가 좌우로 줄을 맞추어 질서 있게 서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규모가 있는 성도는 진리 안에서 절제하면서 질서를 지키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믿음의 굳은 것’은 진리의 말씀을 굳게 믿고 어떤 환난이나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6-7]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우리 성도는 예수님을 주(주인)로 받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도 안에 계시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요 15:5참조).
성도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여야 한다.
성도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하였다.
우리가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의식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은 나무로 비유한 말씀이다.
나무가 좋은 땅에 뿌리를 잘 내려야 그 나무가 잘 자라나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그리스도에게서 지혜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에게서 지혜와 능력을 받으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므로 믿음이 자라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열매를 맺힌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은 성도는 예수님처럼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한다.
“세움을 입는다”
우리 성도를 성전으로 비유한 말씀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성전을 건축하고 있다.
유다서 1:20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라고 하였다.
성도가 자기를 건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다.
집을 건축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십자가 구속과 영생 얻은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 은혜만 생각하여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마귀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점점 거룩한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또 이러한 우리를 다른 사람이 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8]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철학과 헛된 속임수”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진리가 아닌 인간의 사상이다.
성도가 인간의 사상을 진리로 착각하면 믿는 일에 엄청난 손해가 난다.
마귀가 철학과 인간의 말을 이용하여 성도를 노략하여(강탈하여) 마귀의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
철학은 인간의 지혜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로 진리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는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요 14:6, 17:17).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다.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
사람의 유전이란 사람이 만든 전통, 전설, 사상을 말하며 세상의 초등 학문은 세상에 속한 학문을 말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잘 넘어가고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라가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간다.
[2:9-10]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신성(지혜와 지식과 선과 사랑과 거룩과 의와 진실)이 충만하다.
예수님의 육체만 보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신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우리는 사람일 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성도들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양자의 신분)이긴 하나 인격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충만하게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충만한 사랑으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정사와 권세는 정사와 권세를 주장하는 천사를 말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를 주장하시는 머리이시다(엡 1:21참조).
[2:11]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 안에서”
사도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강조 하였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새 생명을 받았으며 이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온전히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할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표징이다(창 17:11).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표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곧 복음의 언약과 같은 것이니,
1)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이다(창 17: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심히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이니 곧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갈 3:29).
2)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창 17:7).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인 후손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을 의미한다(롬 4:11-12참조).
이방인도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3)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신다(창 17:8).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은 영원한 기업 곧 천국을 상징한다(히 4:8-9참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처 곧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다(롬 8:16-17참조).
할례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팔일 만에 그 아이의 양피를 베는 의식이다.
양피를 베면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죄를 통회하며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양피를 벨 때 피를 흘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장차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구속하여 주실 것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롬 4:11참조).
신약시대에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의식적인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도 의식적인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를 중요시했다(렘 4:4).
[2:12]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할례를 받지 않고 세례를 받는다.
세례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죄를 씻었다는 뜻이요 구원받은 표이다(행 22:16; 벧전 3:21참조).
세례의 의식을 통하여 죄를 씻는 것이 아니며 복음을 믿음으로 죄를 씻어 의롭게 된다(롬 5:1참조).
세례는 복음을 믿는 자가 죄를 씻어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장사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롬 6:3-4참조).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며 육신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악하다.
그러므로 기회만 있으면 그 악한 본성이 발동하여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욕심을 따라 죄를 범하게 한다.
이 육신의 사람이 곧 옛사람이다.
성도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롬 6:6).
죽은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옛사람이 죽을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이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이다(요일5:11).
이 영생의 새 생명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엡 2:1, 5).
영생의 생명으로 살아난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엡 2:5).
따라서 이 영의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요일 3:9).
[2:13] 13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성도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그 영이 죽은 상태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창 2:17).
죽음은 육체의 죽음 뿐 아니라 영의 죽음(엡 2:1)과 지옥의 멸망까지도 의미한다(계 20:14).
무할례로 죽었다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로 죽었다는 뜻이다.
[2:14-15] 14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
의문은 의식적인 율법을 말한다.
율법을 그 내용에 따라 구분하면 도덕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식적 율법이란 의식을 통하여 진리를 나타내는 율법이다.
예를 들면 소나 양으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한다든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은 의식적인 율법이다.
그러나 십계명은 도덕적인 율법이다.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 의식적인 제사로 죄 사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실 것을 상징한다(레 4장).
구약시대에는 의식적 율법을 문자대로 지켜야 했으나 신약시대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이 완성되었으므로 의식적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지 않고 그 의식에 내포되어있는 진리를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증서”는 옛날의 노비문서나 채무증서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노비의 문서에 기록된 종은 그 문서가 있는 한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될 수 없고, 채무증서가 있으면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하는 의식적 율법의 증서를 도말하시고(문서를 지워버리고) 제하여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어 의롭게 된 사람은 의식적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정사와 권세”는 정사와 권세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대적하는 악령들을 가리키며, 악령들에게 이용당하는 사람들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이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정사와 권세들이었다.
마귀는 정사와 권세를 이용하여 죄 없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리고 승리하셨다.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뱀)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신 말씀과 같다.
[2:16]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 곧 의문에 속한 율법이다.
율법에 금지된 짐승의 고기를 먹거나 율법으로 정한 절기(유월절과 초막절 등을 말함)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문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성도를 폄론(정죄)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신약시대 성도들에게도 율법에 금한 것을 먹거나 율법의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정죄하였다.
지금도 어떤 교파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시대 성도가 토요일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본문이 증거 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는 말씀에서 “비판”은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 월삭, 안식일은 다 같이 의문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신약시대 성도들이 이 의문에 속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누가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만일 신약시대에도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 월삭도 지켜야 할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너희를 정죄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신약시대에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 월삭을 문자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안식일(토요일)도 문자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2:17]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것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말하는데 장래 일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보다 중요한 것은 몸(실체)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그림자이며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다.
안식일(토요일의 안식일)도 그림자요 몸은 그리스도의 것(주일)이다.
안식일에 대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1)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잘 섬겨야 한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이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2)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사람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예배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려야 한다.
3)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것을 알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속죄 제물이 되게 하신 것도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2:18-19] 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로새 교회에 잘못된 사상이 들어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마귀가 교인들로 하여금 바른 진리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잘못된 사상 곧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넣어주었다.
“일부러 겸손함”
마음은 겸손하지 않으면서 겉에 나타나는 행위로만 겸손한 척 꾸미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속이 겸손하고 겉도 겸손해야 한다.
속은 교만하면서 겉으로 겸손한 척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고, 외식하는 죄이다.
“천사 숭배”
구약시대에는 종종 천사가 나타났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주었고, 요셉에게도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사가 나타나는 체험을 하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다.
초대교회 때에 영지주의(그노시스)라고 하는 철학사상이 유행하였는데 그 중심 사상은 선과 악의 이원론이었다.
선한 신은 영적 세계를 주관하고, 악한 신은 물질세계를 주관한다고 주장하였다.
천사는 육체가 없으므로 아주 선하고 귀한 존재라고 그들이 주장하였다.
이러한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골로새 교회 안에 천사를 숭배하는 자들이 있었다.
성도들이 이러한 잘못된 사상에 빠지면 믿는 일에 큰 손해가 난다.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믿는 일을 잘하면 천국에 들어가 큰 상을 받지만 믿는 일을 못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을 잃어버린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받으면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천국에서 받는 상은 세상의 금메달과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영광스럽고 영원한 상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실패이다.
믿는 일을 잘하려면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이다(마 5:19; 요일 5:3).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가면 마음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믿는 일을 잘할 수 없고 천국의 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천사 숭배하는 사람들이 ‘나도 천사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사 보기를 사모하며 기도하다가 꿈속에서나 환상 중에 천사 비슷한 것을 보고 천사를 보았다고 헛되이 과장하는 자가 많이 있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고 하였다.
마귀가 마귀로 나타나면 멀리하겠으나 마귀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천사인 줄 알고 영접하면 마귀가 그 사람 안에 들어온다.
참으로 천사가 나타나 역사하였다면 그 사람이 겸손하고 거룩한 말과 행동을 하여야 한다.
육체의 마음에서 욕심과 교만한 생각이 나와 자기를 높이려고 헛되이 과장한다.
그러므로 육체의 마음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붙들어야 할 머리(그리스도)를 붙들지 못한다.
성도는 항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 주님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이러한 성도는 머리(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공급받는다.
성도가 환난과 핍박을 만나 믿음을 지키기 어려울 때도 주님에게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공급받으면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 믿음이 자라나고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된다.
[2:20] 20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성도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세상의 초등 학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초등 학문은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는 세상의 학문일 뿐이다. 의문(의식적인 율법)도 초등 학문에 속한다.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의식적인 율법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그것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2:21-22] 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로새 교회 안에 의식적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가 들어와 율법으로 정한 바부정한 것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다(레 11장 참조).
사람이 무엇을 붙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은 외부적인 행동이며 그것 때문에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정작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막 7:21참조).
악하고 더러운 마음에서 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를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말과 행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23] 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라가며 의식적 율법을 지켜 먹지 않고 만지지 않는 것은 자의적 숭배(자발적인 경건)와 스스로 겸손한 척하는 것이 스스로 몸을 괴롭게 하는 일에는 지혜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의 생각과 욕심을 금하는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
성도가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육체의 욕심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성도가 믿는 일에 실패하는 것은 육체에서 나오는 욕심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따라가지 않도록 육체를 따라가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초등 학문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고 세상의 초등 학문에 종노릇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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