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신앙의 전진 고석남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6장 신앙의 전진 고석남 목사 히브리서 강해


■ 본문 분해


1.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1-8)

2. 너희는 구원에 가까움(9-12)

3. 소망의 견고함(13-20)


■ 본문 강해


1.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1-8)


1) 도의 초보에만 머물지 말라(1-2)

2)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3)

3) 회개할 수 없는 죄(4-8)


[6:1-3]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1-2절의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지 말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교리)의 초보를 의미한다. 


1) 죽은 행실을 회개함.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행하던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막 1:15).


2) 하나님께 대한 신앙.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고, 죄를 심판하는 공의로운 하나님과 죄인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초보이다. 


3) 세례에 대한 교훈. 

“세례”는 구원받은 표로서(벧전 3:21), 죄 사함을 받은 것(행 2:38; 22:16)과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롬 6:3)을 믿는 표이다. 


4) 안수에 대한 교훈. 

안수는 주님의 축복을 의미하며(막 10:16),성령을 받는 것(행 8:18)과 하나님께 직분을 받는 것(행 6:6)을 의미한다. 


5) 죽은 자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들이 장차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할 것을 말한다.


6) 영원한 심판. 

장차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행 10:42). 

그때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하는 복을 누린다. 

이 여섯 가지 교훈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초보적인) 교리이다. 

성도가 이 기본적인 교리를 버리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기본적인 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이다.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인 교리를 다시 닦지 말고, 그 진리를 굳게 서서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다. 


[6:4-6]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한번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하늘의 은사를 맛본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한 번이 아니라 자주, 항상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어야 한다. 

또 하늘의 은사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체험하여 우리 신앙과 인격이 자라나야 한다. 

음식의 맛을 보는 것은 유익이 없고 그 음식을 먹어야 살이 되고 피가 된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는 사람은 천국의 은사에 대하여 들을 때만 좋아하고, 실제 생활은 여전히 이세상에 소망을 두며 천국과 무관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고”

성령의 외부적인 감동을 받은 것뿐이고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마 7:22). 

성령을 받아야 복음이 믿어지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맛만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다(마 13:21).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는 것(마 13:23)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곧 그 말씀을 버리고 순종하지 않는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사람도 내세의 능력을 지식으로만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현세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에, 위험한 일을 만나면 죽을까 봐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내세의 능력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다. 


“타락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말씀)의 초보(기초)를 맛보고 타락한 자가 일시적인 타락인가 영원한 타락인가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시적인 타락이라면 타락한 자가 구원을 받았으나 타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영원한 타락이라면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절)는 말씀으로 보아 타락한 자가 영원히 타락한 불신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말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가 불신자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도 일시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예수님을 삼 년 반이나 따라다녔으나 타락하여 망하였다.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성령의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인 교리를 지식으로 알면서도 고의로 타락하여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 거역한 죄는 회개하지 못하고 망하였다(민 22:9-12; 삼상 15:17-23 참조). 


[6:7-8]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하며 땅에 자주 내리는 비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채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악한 행위를 상징한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열매를 맺혀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고 교회에 나오는 교인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받으면서(맛보면서도)도 불신앙의 악한 열매를 맺혀 마지막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 


2. 너희는 구원에 가까움을 확신함(9-12)


1) 하나님은 불의치 아니하심(9-10)

2) 하나님께서 너희 행위와 사랑을 기억하심(10)

3) 믿음이 좋은 성도를 본 받아라(11-12)


[6:9-10]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4절부터 8절까지 말한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일시적인 감동으로 초보적인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가 배도 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다.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너희는 4-8절의 타락한 자들보다 나은 믿음이 있어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선한 행위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성도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그 믿음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선한 행위가 나온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행하거나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욥 34:10). 

공의로운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고,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며 수고한 모든 행위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은혜와 복으로 갚아주신다. 


[6:11-12]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성도들이 믿는 일에 부지런하여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말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교회 안에는 바른 믿음으로 믿음이 점점 자라나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잘 믿는 성도처럼 열심을 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마귀의 시험을 받아 믿음을 배반하는 사람도 있다.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성도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천국에 들어갈 소망(눅 23:43)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신 28:1-6), 천국에 가서도 큰 자가 될 소망이 있다(마 5:19). 그러므로 성도들이 게으르지 말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도록 힘써야 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성도가 복음의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면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오래 참아야 믿음을 끝까지 잘 지킬 수 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오래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복으로 갚아주신다. 


3. 소망의 견고함(13-20)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심(13-14)

2)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음(15)

3) 하나님의 맹세의 효과(16-17)

4) 우리가 휘장 안에 들어감(18-20)


[6:13-14]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다. 

맹세는 약속에 대한 보증이다(17절). 

사람이 어떤 약속을 하고 맹세할 때 그 약속에 대한 가장 큰 보증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다(창 22: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나님 자신의 맹세로 보증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것이다(창 22:17 참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번성케 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손이 번성케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고 기록되었다.


[6:15]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이 칠십오 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 12:4). 

그러나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백 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게 되었고(창 2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리스도는 이천 년이 지난 후에 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말씀)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오래 참아야 한다.


[6:16]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사람들이 맹세할 때 자기보다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한다.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확정(βεβαίωσις, 베바이오시스)”은 “확고함, 확실한 증거”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말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으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 대하여 보증이 되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약속하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였으면 하나님이 그 맹세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다. 


[6:17-18]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천국 기업을 약속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약속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셨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은 약속과 맹세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약속에 대하여 맹세로 보증까지 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앞에 있는 소망’은, 구원의 소망 곧 우리가 죽어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하는 소망이다. 

우리가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므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하는 소망이 있다. 


“피하여 간다(καταφεύγω, 카타퓨고)”의 의미는 “도망하다, 달아나다.”의 뜻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으나 앞에 있는 소망 곧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는 자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고난을 피하여(극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구원의 소망이 큰 위로가 된다.


[6:19]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닻을 매지 않으면 배가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거나 파선하기 쉽다. 

그러나 배를 닻에 매어 놓으면 배가 떠내려가거나 파선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안전하다. 

우리 성도들에게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환난풍파가 일어날 때 우리 마음이 요동하고 믿음이 파선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성도 앞에는 구원의 소망 곧 천국에서 영생하는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영혼의 닻과 같아서 아무리 큰 환난 풍파가 있어도 믿음이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다.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휘장 안은 성전의 지성소를 말하며 그 지성소는 천국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레 16:2).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휘장 안(천국)에 들어간다. 


[6:20]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 년에 한 번만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를 하였다(레 16:17; 33-34 참조). 

그러나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리시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가지고 하늘의 지성소 곧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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