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성도의 자라남 고석남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2장 성도의 자라남 고석남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 본문 분해


1. 거듭난 자는 자라나야 한다(1-10).

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1-17).

3. 그리스도를 본받으라(18-25).


■ 본문 강해


1. 거듭난 자는 자라나야 한다(1-10).


1)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1)


[2:1]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으나 아직 어린아이 상태이므로 자라나야 한다. 

자라난다는 것은 믿음이 자라나고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이 말하되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라고 하였다. 


성도가 자라나려면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버릴 것은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이다. 

악독(κακία, 카키아)은 “악함, 원한”을 의미하고, 기만(δόλος, 돌로스)은 “미끼로 꾀어내다. 교묘하게 속인다.”는 뜻이다. 

외식(ὑπόκρισις, 휘포크리시스)은 “기만, 위선, 속임”의 뜻이다. 

시기(φθόνος, 프도노스)는 “악의, 질투, 시기”를 의미한다. 

비방하는 말(καταλαλία, 카탈랄리아)은 “중상, 험담, 악담”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모든 악한 생각과 악한 말과 악한 행위를 버려야 믿음이 자라나고 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된다. 

성도에게 있어서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질병과 같아서 성도가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고, 인격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한다. 


2)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2-3).


[2:2-3]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성도가 자라나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한다. 

갓난아이는 젖을 잘 먹어야 잘 자라난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말과 사상을 섞어서 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하되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깨끗한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전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도 마음이 깨끗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어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믿고 순종할 수 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그러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성도의 몸이 부활하여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자라나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우리가 진리를 깨달은 것만큼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한 것만큼 믿음과 인격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3)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4-10).


[2:4-5]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은 보배로운 산 돌이시다. 

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에 비하면 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돌은 썩지 않고 견고하여 성전을 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요긴한 기초 돌로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사람들에게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사 53: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선택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셨으나 죽은 자 가운데 썩지 않고 다시 살아 산 돌이 되셨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집은 성전이다. 

예수님은 성전의 터(기초)가 되셨다(고전 3:11). 또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요 2:19-21). 

예수님 안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하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행하셨다(요 8:29; 14:10).

성도들의 몸도 성전이다(고전 3:16, 6:19).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시 11:4; 합 2:20). 

성도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고(요일 4:15), 예수님이 계시며(고후 13:5),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다(고전 3:16).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인격이 거룩하게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자기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이다(롬 12:1). 


[2:6]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그리스도(구세주)이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기초 돌이며(마 16:18 ) 또한 교회의 머리이시다(엡 1:22).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와 생명으로 연합(연결)되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2:7-8]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배이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천하에 둘도 없는 가장 귀한 보배이다. 

사람들이 수백만 원짜리 보석만 가지고 있어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천하보다 귀한 보배 예수님을 성도들이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버린 돌(예수님)이 그들에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어 그들을 멸망하게 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여 넘어졌고, 믿지 않는 자들은 넘어지도록(멸망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2:9]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혈족, 자손, 민족)이다. 

사람들은 자기 족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상들이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자랑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족속이 되었으니 대단히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왕은 존귀하고 큰 권세가 있는 자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직접 제사를 드릴 수 없어 제사장이 대신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시대 성도들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복을 받았으니 왕같이 존귀한 제사장들이다. 


“거룩한 나라요”

세상 나라는 불의와 죄가 있는 나라요, 시기와 전쟁이 있는 나라요 질병과 빈곤으로 사람들이 고생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의와 사랑과 화평이 충만하고거룩한 나라이다.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복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동물처럼 단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의 것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두움에 사는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구원이다.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그의 기이한 빛”은 하나님의 빛이다(요일 1:5). 

하나님의 기이한 빛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빛이요,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빛이다. 

누구든지 이 기이한 빛을 받으면 예수님이 구세주로 믿어지고, 진리가 깨달아지게 된다.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덕이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선행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덕(종교적인 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선행이다. 

하나님의 덕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2:10]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성도들이 복음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또 성도들이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1-17)


1)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11)


[2:11] 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의 정욕은 영혼을 거슬러 싸우기 때문에 성도들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므로 믿음이 자라날 수 없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성도의 마음에서 육체의 정욕이 발동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 잠시 나그네와 행인 같은 생활을 하다가 죽으면 천국의 본향으로 돌아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육체의 정욕을 버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옛사람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 하였다. 


2) 선한 행실을 하여야 한다(12).


[2:12]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성도의 선한 행실은 복음 전도의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불신자들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않음으로 악행을 한다고 비방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불신자들이 볼 때는 성도들이 조상에게 제사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죽은 조상에게는 제사하지 않지만 살아있는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여 선한 행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지키되 선한 행실을 하여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보고 성도들을 비방하는 말을 그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날에는 그들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3) 인간의 제도를 순종하라(13-17)


[2:13-14]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성도의 선한 행실 가운데 하나는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복하는 것이다. 

세상 나라의 왕이나 방백들도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악한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들을 칭찬하기 위함이다.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 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단 2:20-21)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에 세운 제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지 않는 한 성도들이 잘 순종하는 것이 선한 일이다.


[2:15]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성도들이 인간에 세운 제도를 순종하면 그 선행의 열매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리에 무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하고 반대한다. 

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다가도 성도들의 선한 행위를 보게 되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반대하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도 있다.


[2:16] 16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성도는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 죄에서 해방된 자유가 있다. 

또 성도는 천국 백성으로서 세상 나라에 얽매이지 않고 양심을 따라 진리를 순종할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성도가 죄를 범하여도 괜찮다거나 세상의 모든 제도를 무시하여도 되는 자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세상의 옳지 않은 일에 얽매이지 말고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17] 17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성도가 모든 사람을 공경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믿는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여야 한다. 

왕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도덕을 잘 지켜 선한 행실로 세상에 빛을 비추도록 명령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다. 


3. 그리스도를 본받으라(18-25).


1) 주인에게 순복하라(18-19)


[2:18]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종, 하인)은 범사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종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주인을 주인의 자리에 세우고, 종을 종의 자리에 세운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하셨고,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라고 하셨다. 

성도들이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셨다.


[2:19]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종들이 잘못한 것 없이 주인에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는 수가 있다. 

누구나 세상에서 살다 보면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수가 많이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는 수도 있고, 비방을 받는 일도 있으며 시기를 받아 어려움을 당하는 수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허락하신 줄로 알고 그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면 복이 된다. 

또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사정을 아시고 각자가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을 믿고 슬픔을 참으면 아름다운 것이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성도에게 유익을 주시려는 것이다(시 119:71). 


고난을 통하여 받는 성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① 죄를 회개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징계로 고난이 온다.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0-12)고 하였다. 


② 겸손을 배우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겸손하게 된다. 

바울을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에 가시(고난)를 주셨다.

바울이 말하되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고 증언하였다. 


③ 인격이 거룩하게 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고 하였다. 

고난이 올 때 참고 믿음을 지키면 믿음이 자라나고 인격이 거룩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성도 자신은 큰 은혜와 복을 받는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하였다. 


2)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20).


[2:20]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죄가 있어 사람이 하나님께 매를 맞고 참으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요 칭찬받을 것이 없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죄가 없는 에덴동산에서는 고난도 없었다. 

사람이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경우에는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야 한다(히 12:8-13).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때에도 잘 참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요 더 좋은 복을 받는다. 


3)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심(21-25)


[2:21-22]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도 참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가 전혀 없이 받으신 고난이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으로 거짓말도 전혀 하신 일이 없었다. 


[2:23] 23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에도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애매히 고난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로마서 12:19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였다.


[2:24]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0-11)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성도들이 나음을 입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심으로 성도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뜻이다. 


[2:25]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 성도가 믿기 전에는 양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어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주님께 돌아왔다.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

영혼은 인간 활동(지·정·의)의 원동력(생명)이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영혼을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셔서 성도들의 영혼을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시 23:1). 

또 주님은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항상 성도의 영혼을 감독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며 잘 순종하여야 한다. 

주님께서 성도를 인도하실 때 실제적인 방법은 성도의 선한 양심을 통하여 인도하신다. 

성도의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양심이다(히 9:14). 

하나님께서 성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한 것은 그 깨끗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또 성도의 선한 양심은 성령이 함께하는 양심이다(롬 9:2). 

그러므로 성도가 선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한다(딤전 1:19). 

사도 바울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행 23:1)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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