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성도의 거룩한 생활 고석남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3장 성도의 거룩한 생활 고석남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 본문 분해


1. 가정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라(1-7)

2. 형제를 사랑하라(8-12)

3.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13-22)


■ 본문 강해


1. 가정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라(1-7)


1) 아내의 도리(1-6)


[3:1-2]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하나님께서 아내 된 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남편이 혹 복음을 믿지 않더라도 믿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는 선한 행위를 보고 그 남편이 아내를 따라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믿는 아내들이 믿지 않는 남편에게 전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말과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때도 말로만 전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항상 말과 행실을 깨끗하게 하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도 방법이다. 


[3:3-4]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아내들은 자신을 예쁘게 보이기 위하여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본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외모를 꾸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여인들이 어느 정도 몸을 단장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으나 외모보다 마음에 숨은 사람, 곧 마음씨가 아름다워야 한다. 

마음씨가 아름다워지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이 온유하고 안정한(조용한) 사람이다. 

성도의 새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마음이 온유하고 평화롭다. 

아내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살면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되므로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 


[3:5-6]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과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처럼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단장하였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복종한 것 같이 아내들이 선을 행하고 두려운 일을 만나도 놀라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선을 행하면 그(사라)의 딸이 된다. 

사라의 딸이 된다는 것은 여인들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딸이 되었으나 사라처럼 남편에게 복종하며 두려운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야 진정한 의미에서 사라의 딸이 된다. 


2) 남편의 도리(7)


[3:7]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에게는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씀하셨다. 


남편이 아내에 대하여 알아야 할 지식은 무엇인가?


①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육체적으로 연약할뿐더러 감정에 있어서도 연약하다. 

여자들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에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남편들이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유리그릇 다루듯 말과 행실에 조심하여 아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하는 자가 지혜로운 남편이다. 


②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로 아는 지식이다. 

아내들이 남편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딸인 줄 알고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아내는 자기 아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다.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눅 6:27).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정에서 자기 아내도 사랑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형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③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 

인류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직접 부부로 짝을 지어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부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심을 계시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을 받을 하나님의 딸인 줄 알고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아내는 자기 아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다.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눅 6:27).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정에서 자기 아내도 사랑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형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③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 인류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직접 부부로 짝을 지어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부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심을 계시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라고 하였다.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그 기도가 막힌다. 

자기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결점만 본다. 

그러므로 교만한 남편은 자기 아내를 멸시하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 마침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도가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2. 형제를 사랑하라(8-12)


1) 형제를 사랑하라(8)


[3:8]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형제는 믿음의 형제를 말한다. 

성도들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 4:20). 


성도들이 형제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①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형제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형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형제와 같은 마음이다. 

형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 체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동정(συμπαθής, 쉼파데스)은 “동료 의식의, 상호 동질적인”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동정”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는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 성도들이 형제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형제의 실수나 잘못이 있어도 그 형제를 이해하고 너그럽게 사랑할 수 있다. 


③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며(εὔσπλαγχνος, 유스팔랑크노스)는 ‘동정심이 많다’는 뜻이다.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선한 마음이다. 

선한 마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에게 말로만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여 도와주게 된다. 

이것이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④ 겸손하여야 한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고전 13:4).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보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며 사랑한다.


2) 선으로 악을 이겨라(9-11)


[3:9]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는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으면 안 되고, 도리어 그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으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성도들이 본래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선한 사람이 되어 천국의 영원한 유업의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10-11]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0-11절의 말씀은 시편 34:12-14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성도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죽음이 들어왔다. 

그러나 성도들이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었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생하기를 사모하며 사랑한다. 

또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소망한다. 

성도가 선한 마음을 품고 믿음을 잘 지키면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라고 하였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

‘좋은 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성도들이 부활하여 구원이 완성되는 날을 의미한다. 

또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성도들이 행한 대로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고 하셨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좋은 날이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나쁜 날이 될 것이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성도가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혀를 바르게 사용하여야 한다. 혀를 잘 다스리지 않으면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그 입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저주하며 사람을 죽이는 독이 쉬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약 3:8-9). 

무심코 뱉은 악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실족하게 만든다. 

가장 악한 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마귀의 말이다(요 8:44).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말과 더럽고 음란한 말이 성도에게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말들은 성도의 입 밖에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경고하였다(엡 4:29).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항상 말을 아끼고 조심하여야 한다. 


3) 주님께서 심판하심(12)


[3:12]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2절은 시편 34편 15-16절을 인용한 말씀이다. 

주님의 눈은 선을 행하는 성도를 보시고 복으로 갚아주시며, 주님의 귀는 선을 행하는 자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노한 얼굴로 바라보시고 반드시 형벌하신다. 

시편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시 34:15-16)라고 하셨다. 


3.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13-22)


1) 선한 양심을 가지라(13-17)


[3:13]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성도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보통은 그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선을 행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성도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 성도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


[3:14]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성도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게 되면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라고 말씀하셨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다가 풀무 불 속에 던짐을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타지 않게 보호하셨다(단 3:19-27). 


[3:15]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성도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주님을 본 삼아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성도가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죽어도 그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불신자들이 성도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난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키느냐고 물어보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답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한다. 


[3:16]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을 가지라”

성도가 항상 선한 양심을 버리지 말고 선한양심을 따라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을 하여야 한다.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핍박하는 자들에게 악한 감정에 사로잡혀 선한 양심을 버리고 악한 말이나 행동을 하기 쉽다. 

그때 성도들이 선한 양심을 써야 자기감정을 다스려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다.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성도의 선한 일을 욕할 수 있다. 

예컨대 성도가 우상 숭배하지 않기 위하여 조상에게 제사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그것을 보고 기독교인들은 조상도 모르고 조상에게 효도하지 않는다고 비방한다. 

또 성도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화목하지 않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고 비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도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다른 면에서 선한 행실을 하면 그들의 비방하던 일들이 잘못된 줄로 알고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3:17]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한다. 

욥기 5:7에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라고 하였다. 

사람이 빈부귀천을 무론 하고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므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여야 한다. 


2) 그리스도의 고난(18)


[3:18]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셨으나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의 속죄 사역을 위하여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에 들어가셨다. 


3) 노아 홍수와 세례(19-22)


[3:19]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본문의 말씀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지옥에 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신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영(靈)으로 노아에게 가셔서 노아와 함께 그 시대 사람들(베드로 당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를 20절에서 증명된다


[3:20]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들 곧 “옥에 있는 영들”은 전에(옥에 드러가기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벧후 2:5). 

그때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곧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방주에 들어가야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씀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이 노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전한 말씀을 복종하지 않아 지옥에 갔고,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들은 겨우 여덟 명이라고 베드로가 증언한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본문의 말씀을 오해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하며 연옥설의 근거로 삼고 있다1).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영으로 지옥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다면 하필 노아 시대에 복종하지 않은 영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실 리가 없고 아담 이후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천주교의 주장은 성경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주장이며 대단히 잘못된 주장이다.


[3:21]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 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한 것은, 노아 홍수를 신약시대의 세례에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를 통하여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행하셨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홍수심판을 받아 죽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노아의 여덟 식구는 구원을 받았다. 

그와 같이 신약시대의 세례(구원)받은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범한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죄에 대한 심판-롬 6:3), 영생을 얻어 죄로 죽었던 영이 살리심을 받았다(구원-엡 2:5).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는 성도가 구원받은 것을 상징하는 표지(標識)이다. 

성도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를 씻어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세례(洗禮)의 의미는 죄를 씻었다는 뜻이다). 

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씻는 것이 아니다. 

세례는 이미 복음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성도가 죄를 씻어 깨끗하게 되었다(구원을 받았다)는 표(표지)이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구원받은 표로 세례를 베푼다. 

그러나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은 성도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말한다. 

구원받은 성도의 양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히 9:14). 

그리스도의 피로 성도가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된 것을 성도의 양심이 믿고,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양심이 죄를 떠나 깨끗하게 살도록 성도에게 간구한다.


[3:22]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하나님 우편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권세와 영광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리스도에게 항상 복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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