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성부(聖父) 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제3장 성부(聖父) 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 본문 분해
1. 하나님의 자녀(1-3).
2. 범죄 하지 말 것(4-10).
3. 서로 사랑하라(11-24).
■ 본문 강해
1. 하나님의 자녀(1-3)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알라(1).
[3:1] 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보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극진한 사랑을 신령한 눈으로 보고 깨달아 알도록 강조하는 말이다.
영의 눈이 열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보고 체험한 것처럼 깨달아 믿는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고 말씀하였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우리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크고 놀라운 사랑이다.
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양으로 희생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사랑이다.
첫째,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성도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하셨다(고후 5:15; 롬 5:1).
둘째,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셨다.
성도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도록 하셨다(엡 2:5).
또 성도들은 몸이 죽어도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몸이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다.
셋째,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게 하셨다.
성도들이 전에는 마귀의 종노릇 하던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며 행복하게 살게 하셨다.
② 성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주셨다.
첫째,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주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삼상 15:22),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눅 6:27), 성도들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된다(요 17:17).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복을 다 주신다(신 28:1-6).
둘째, 성도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성령이 우리 성도 안에 계신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하셨다.
또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셨다.
셋째, 성도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 안에 계시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처럼 선한 생각과 선한 말과 행동을 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요 15:5).
③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셔서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항상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얻게 하셨는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확실히 안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에게 주신 사랑을 알지 못한다.
2) 장래에 나타날 영광(2)
[3:2]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성도들이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외모만 보면 성도들이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우리 성도들이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계신 그대로 볼 것이다.
그때는 우리 성도들이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자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한다.
3)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3).
[3:3]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부끄러움이 없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그리스도께서 깨끗하신 것처럼 항상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잠시 나그네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욕심을 따라 죄를 범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2. 하나님의 자녀는 범죄 하지 말라(4-10)
1) 죄는 불법이다(4-5).
[3:4]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는 불법이라”
죄는 사람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불법은 “악행, 죄, 옳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자기 양심에 가책되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면 죄이다.
“이는 우리 마음(양심)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요일 3:20)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먼저 선한 양심을 순종하여야 한다.
특히 성도의 양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선한 양심이며 성령의 빛을 받는 양심이다.
히브리서 9:14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선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한다(딤전 1:19).
그러나 양심은 죄를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말씀처럼 완전하지 못하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경우 성도가 그 말씀을 어겨도 양심에 가책이 없을 수 있다.
양심에 가책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죄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그 말씀에 맞도록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3:5] 5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은 성도의 과거의 죄만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가?
① 예수님께서 속죄양으로 죽으셨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하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셨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으면 단번에 죄 사함을 얻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②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로마서 6:6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들의 옛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대로 죄를 범하는 사람이다(엡 4:22참조).
그러므로 성도들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으면 성도들이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③ 예수님의 부활로 대속을 완성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죽으시고, 예수님의 부활로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는 일을 완료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이 완료된 여부를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완료된 것을 객관적으로 확증한다(롬 4:25)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히 4:15).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으므로 아담의 원죄가 없고, 예수님은 세상에서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벧전 2:22).
예수님은 죄가 없으니 죽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속죄양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 하지 않음(6)
[3:6] 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pa'" o J e jn au jtw '/ mevnwn oujc aJmarta vnei)”
“그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머물러 있는) 자를 의미한다.
“거하는 자”와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의 두 동사가현재분사여서 계속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동안은 계속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 밖 곧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 마귀의 미혹을 받아 욕심을 따라 죄를 범할 수 있다.
불신자들도 경찰과 함께 있는 동안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하물며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안 어떻게 죄를 범하겠는가?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범죄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는 불신자들이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범하는 경우는 마음이 그리스도를 떠나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기 때문에 심령(영)이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식하지 못한다.
3)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7-8).
[3:7]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사탄의 종들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욕심을 따라 죄를 범하게 한다.
사도 요한 때 영지주의자들이 인간의 이원론을 주장하여 사람이 육체로 죄를 범하여도 영(영혼)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미혹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영(영혼)과 육신이 통일된 하나의 인격을 이루기 때문에 육신이 죄를 범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의를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이다(6절).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의로우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므로 그리스도처럼 의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셨다(엡 2:10참조).
[3:8]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의 인도를 받는다.
마귀는 처음부터 교만하여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죄를 범하였고 또 하와를 꾀어 죄를 범하게 하였다.
마귀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을 미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신자는 근본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이며, 성도일지라도 죄를 범할 때는 그 마음이 그리스도(하나님)를 떠나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범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일은 죄를 범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여 성도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어떻게 멸하시는가?
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으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골 2:15).
마귀는 죄인들에게 왕 노릇을 한다.
예수님께서 속죄양으로 죽으셔서 우리 성도의 죄를 대속하셨고, 성도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② 성도의 옛사람을 죽게 하셨다(롬 6:6).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성도의 육신은 죄로 인하여 부패한 성품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방심하면 죄를 범한다.
바울이 말하되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8-1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성도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으면 죄를 범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은 죄를 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의 표준이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그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죄를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엡 6:17).
4)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9-10)
[3:9] 9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두 가지로 해석할수 있다.
첫째, 구원받은 성도를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관점에서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가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롬 7:18-19).
둘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이다.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만일 죄를 짓는다면 그리스도는 마귀보다 능력이 없고 약한 존재로 인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였고,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라고 하였다(엡 4:24 참조).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①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성도가 거룩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성도가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라고 말씀하셨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라고 말씀하셨다(요 8:29 참조).
③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하나님의 씨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생명이다.
씨에는 생명이 있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생명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의미한다(요일 5:11).
성도가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며, 성도의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고전 6:17).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
요한일서 5:18을 참조하면 “하나님의 씨”가 하나님의 생명임이 더욱 분명하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라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말씀을 씨로 표현할 때는 씨(σπόρος, 스포로스)를 남성명사로 기록하였다(눅 8:11).
그러나 본문의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씨(σπέρμα, 스펠마)는 중성명사로 표기 되었다.
그러므로 씨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성도가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3:10]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범하지 않고 마귀의 자녀들은 죄를 범하므로 완전히 구분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릇 의를 행하지 않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이다.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들도 죄를 범하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범한다.
3. 서로 사랑하라(11-24).
1)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다(11-12)
[3:11] 11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에도 있는 말씀이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고 말씀하셨다.
[3:12]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가인이 실수로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니다.
그는 고의로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다.
그러므로 가인처럼 고의로 악한 마음으로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1)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동생을 죽였다.
가인이 악한 마귀에게 속하여 자기 동생을 죽였다.
죄를 범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마귀에게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라고 말씀하셨다.
2) 가인이 동생을 시기하여 죽였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창 4:4-5).
그 일로 인하여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미워하다가 죽였다.
시기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니 교만한 마음에서 시기가 나온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항상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한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다(마 27:18).
3) 가인이 죄를 다스리지 않고 동생을 죽였다.
가인이 아우를 시기하므로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창 4:6-7).
그러나 가인이 죄를 다스리지 않고 끝내 동생을 죽였다.
가인이 동생을 시기하므로 미워하게 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마침내 동생을 죽였다.
4) 가인이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다음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 “제가 죽였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가인이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거짓말을 하며 회개하지 않았다(창 4:8-9).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며 마귀의 종들은 자기 양심을 속여 죄를 범하고 죄를 범한 다음에도 거짓말을 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요 8:44).
2)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함(13-15)
[3:13]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은 마귀에게 속하고 성도는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라고 말씀하셨다.
[3:14] 14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가 형제(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영생을 얻은 증거이다.
영생을 얻으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영혼)이 살아난다(엡 2:5).
그러므로 성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순종하여 섬길 수 있게 된다.
성도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증거이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자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혹시 어떤 이유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행위를 지속하는 시간 동안 불신자들처럼 사망의 세계에서 육신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3:15]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사람이 살인하게 되는 것은 미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미워하는 마음이 극도에 달하면 살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정신적으로는 이미 살인하는 자이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살인하는 자마다 그 사람 속에 영생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며(요일 5:11), 영생을 얻은 성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고후 13:5).
영생을 얻은 성도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살인할 수 없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사람 속에 거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3)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라(16-19)
[3:16]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목숨을 버리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을 알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①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의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마땅하다.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라고 말씀하셨다.
② 목숨을 희생하는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속죄 제물로 희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형제들을 위하여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희생적인 사랑을 하여야 한다.
③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라고 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원수까지 사랑하되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며 끝까지 사랑하여야 한다.
[3:17] 17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물질이 아까워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면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고후 13:5), 성도의 영과 연합되었다(고전 6:17).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궁핍한 형제를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재물이 아까워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면 그 사람은 형제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3:18-19] 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말과 혀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수고와 희생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말과 혀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수고와 희생이 없이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그가 진실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수고와 희생이 있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다.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굳세게 한다(πείθω, 페이도)’의 의미는 ‘확신한다, 화해한다’는 뜻이다.
우리 성도가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자신이 주 앞에서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며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4)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하라(20-24).
[3:20] 20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 일은 하나님 앞에도 옳지 않은 것이다.
우리 양심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우리 마음(양심)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옳다고 판단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 일이 죄인 줄 알고 즉시 버려야 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
[3:21-22]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만일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행동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심에 가책되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①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양심에 가책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그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려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2)고 말씀하셨다.
②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성도는 양심에 가책이 없도록 행동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골 1:10; 살전 4: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하셨다.
③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구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합당한 것을 구한다.
성도가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따라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눅 15:7)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삼상 15:22)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3:23]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이다(마 1:21).
① 속죄양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양으로 죽으신 것을 우리가 믿어야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된 것을 확신하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 우리 성도들이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믿어야 죄에게 종노릇을 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롬 6:6).
②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얻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것을 믿을 수 있다(엡 2:5).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영(영혼)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그리스도(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요 15:5; 빌 4:13)
③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죄악 세상을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된다(고후 5:10).
우리 성도가 이것을 믿어야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힘쓰게 된다.
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우리 성도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 성도가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잘 지키며 거룩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다(마 22:37-40).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속죄양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요 13:34).
[3:24]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우리가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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