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제4장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고석남 목사 요한일서 강해


■ 본문 분해


1. 영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1-6).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7-14).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자(14-21).


■ 본문 강해


1.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1-6).


1) 거짓 선지자가 나왔기 때문이다(1-3).


[4:1] 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시대마다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며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에 큰 피해를 입히는 일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한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영으로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므로 순진한 성도들이 잘 속는다. 

그러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4:2-3] 2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며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사도 시대에 영지주의(그노시스주의)자들이 나타나 영은선한 신이 창조하여 선하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나 물질은 악한 신이 창조하여 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았다면 죄인들을 구원하는 그리스도(구세주)가 되실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십자가 구속이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마 1:21).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면 반드시 속죄양으로 죽어야 한다. 

만일 예수님에게 육체가 없다면 속죄양으로 죽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죄인의 구세주가 되실 수 없다. 


②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 

예수님에게 육체의 몸이 없다면 예수님께 없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도 없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고 하셨다. 


또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성도들이 부활할 소망도 없어진다(고전 15:20 참조).


③ 성도의 모본이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라고 하셨다. 

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에게 육체가 없다면 십자가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이 될 수 없고, 우리가 본받는 일이 불가능하다. 


2) 성도는 하나님께 속하였다(4).


[4:4] 4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넉넉히 이긴다. 

성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요일 4:15),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요 17:21; 고전3:16)

성도 안에는 계신 성령께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므로 진리를 부인하는 모든 거짓을 물리치고, 마귀의 종들인 거짓 선지자들을 넉넉히 이긴다. 

이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이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권세와 능력이 크기 때문이다.


3) 불신자는 세상에 속하였다(5-6).


[4:5-6] 5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마귀의 종들 곧 거짓 선지자는 세상에 속하였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잘 듣는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는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 


미혹의 영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욕심을 품고 불의를 좋아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1-12)라고 하셨다. 


② 진리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이 진리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시편 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7-13)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7-8) 


[4:7]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되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권면하였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ἀϒἀπη, 아가페)‘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참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이 있고, 인간에게 속한 인간적인 사랑이 있다. 

인간적인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혈족 간의 사랑(στορϒἠ, 스톨게)과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ἔρω, 에로스)과 친구 간의 우정적인 사랑(φιλἰα, 휠리아)이 있다1).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이기주의(利己主義)와 욕심으로 말미암아 변하기 쉬운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ἀϒἀπη, 아가페)은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으로 변하지 않는 거룩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우리 성도들의 외모만 보면 거듭난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증거가 된다. 

또 “하나님을 알고”의 ‘안다’는 동사가 현재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생활이다.


[4:8]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죄를 떠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이 사랑이다. 하나님 안에 사랑이 충만하고, 하나님에게서 무한하고 완전한 사랑이 나온다. 

마치 태양에서 빛과 열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거룩한 사랑이 끊임없이 나온다. 


2)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9-10).


[4:9-10]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친히 나타내 보여주셨다. 


① 죄인들을 먼저 사랑하셨다. 

우리 죄인들이 죄로 더러워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조건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무조건 먼저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無條件的)인 사랑이다. 


②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이다. 


③ 독생자를 희생하신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죄인들의 속죄양으로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여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犧牲的)인 사랑이다. 


3)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11).


[4:11]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 죄인을 먼저 사랑하시고 희생적인 사랑을 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먼저 사랑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여 사랑할 수 없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이다. 


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일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다. 


②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허물과 죄로 영(영혼)이 죽었으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성도들은 영생을 얻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영혼)이 살아났으며(엡 2:5), 그 영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고전 6:17).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하나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③ 성도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13).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성령을 주셨고 성령은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우리 성도의 마음(양심)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서로 사랑할 수 있다. 


4) 사랑할 때 하나님 안에서 거하는 것을 안다(12-13).


[4:12]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다른 사람도 알게 된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 성도들도 서로 사랑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다. 


[4:13]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기뻐하시며 우리에게도 큰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자(14-21) 


1) 하나님 안에 거한다(14-15).


[4:14]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사도들이 직접 보았고 증언하였다. 


“구주(σωτήρ, 소테르)”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세주 곧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요 1:14), 동정녀 탄생을 통하여 죄 없는 사람으로 탄생하셨다(눅 1:34-35)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참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시다(요일 5:20). 


[4:15]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예수님의 외모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지 못한다(고전 12:3).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구원받은 성도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성도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인 연합을 이루고 영적인 교제를 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다(요 8:29, 10:38, 14:10, 20).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이다. 

성도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고전 3:16), 예수님(고후 13:5)과 하나님도 거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다(요일 1:3).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라고 하셨다. 


2) 사랑 안에 거한다(16-21). 


[4:16]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이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랑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랑으로 성도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한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랑으로 교제하며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4:17]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이차적으로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시 62:12; 고후 5:10). 

그때 불신자들이 심판을 받아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고,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상을 받는다(마 16:27).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여 서로 사랑하여야 심판 날에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면 심판 날에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리라”

원문의 뜻은 “그분이 이 세상에 계셨던 것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고난을 감수하시고 목숨을 희생하시면서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4:18]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아 8:6).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람을 보호하려고 한다. 

가령 집에 불이 났는데 어린 자녀가 방 안에 있다면 그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녀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간다. 

이처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거나 두려워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이 있다. 

하나님의 형벌은 당장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마음에 고통이 있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말씀하셨다.


[4:19]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4:20]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그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 형제가 있을 때만 사랑하면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시므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가 쉬운 형제 사랑도 하지 못하면 더 어려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4:21]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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